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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너 때문에 못 살겠다

by 자향자

3살, 이제 제법 생각이란 걸 할 줄 아는 나이다. 어린아이의 기발한 상상력이 폭발하는 시간. 나무 블록으로 피겨 장난감을 위한 침대를 만들어주거나, 기차 트랙의 일부를 떼어내, 미끄럼틀을 만들어 내는 아이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 어릴 적 나도 내 딸아이와 같았을까? 나도 이 아이와 같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나만의 세계를 그려나갔었겠지? 그 시절의 나를 단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퇴근 후 집 앞에서 나를 맞이하며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 아이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아마 할머니가 가르쳐줬을 것이다. 어른에게는 이렇게 대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아이는 조금씩 예의라는 것을 알아가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씩 인지해나가고 있다.



요즘 들어 딸아이는 유독 부모에 대한 걱정 아닌 걱정을 늘어놓곤 한다. 깜깜한 밤에 귀가하는 부모를 보고 "밖에 깜깜한데, 무섭지 않았어?"라는 말을 한다던지, 우는 척하는 엄마에게 다가가 포근히 안아준다던지 제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를 살뜰히 챙긴다. 기특한 녀석.



2주 전부터 곧 다가올 마라톤 대회에 맞추어 러닝을 시작했다. 아이가 낮잠을 자고 있는 틈을 타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운동을 계획해 본 것. 그날따라 바람도 거세고, 날씨도 봄 같지 않아, 달리기를 하는데 애를 먹었다. 러닝을 하는 동안 열기는 오르지만, 손을 꽤나 시린 상태.



그렇게 40분 남짓을 뛰고, 집으로 복귀했다.


"아빠 왔다!"

"아빠, 어디 갔다 왔어?"

"공원에서 달라기 하고 왔어!"

"밖에 그렇게 추운데, 달리기 하는 동안 안 추웠어?"


아이가 하는 말이 참 따뜻했다. 손을 꽁꽁 얼어 시리지만, 아이가 건넨 한마디가 그렇게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워 보일 순 없었다. 나는 부모에게 이렇게 따뜻한 말을 건네어본 게 언제 적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말이지.


"너무 추웠어, 호떡이가 손 꼭 잡아줘."

"응!"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손을 잠깐 잡았다가 손이 차가웠는지 휙 하고 가버리는 녀석의 태도에 웃음이 난다. 진짜 너 때문에 내가 못 살겠다. 녀석 때문에 못 살겠는 이런 추억 계속 쌓아가 보련다.



"행복한 가정이야말로 천국의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라는 조지 워싱턴의 말도 있지 않은가? 훗날 아이가 자랐을 때, 꼭 한번은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때 너는 부부에게 가장 소중한 이였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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