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꾸러기 딸아이는 언제나 호기심으로 가득 찬 아이입니다.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갑자기 동요를 불러 대고, 밖에서 씽씽카를 타다가 꽃 한 송이를 보고 멈춰서는 그 순간을 보면 알 수 있죠. 아이의 머릿속에는 과연 어떤 기발한 생각들이 넘쳐흐르고 있을까요?
지난 주말, 아버지를 주제로 한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강연자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노릇’과 ‘역할’로 나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아버지의 노릇이란 상하 관계를, 역할이란 조력자를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두 단어가 가지는 미묘한 차이를 듣고, 문득 제 어린 시절의 돌아보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호랑이 같으셨습니다. 항상 과묵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항상 눈치를 보며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아버지의 모습을 대부분 존경하지만,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노릇만 놓고 보았을 땐, 제 어린 시절 아버지의 행동이 전자인지 후자인지 쉽게 판단을 내리진 못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딸아이에게 어떤 아버지일까요? 딸아이의 상상력을 존중하고, 말과 행동에 귀 기울이려 합니다. 제가 경험한 어릴 시절의 감정을 딸아이는 느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죠.
보호자이자 조력자로서, 그리고 절대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로 그녀의 곁에 있고 싶을 뿐입니다. 딸아이와 손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워주고, 울음을 멈출 때까지 꼭 안아주는 것과 같은 작은 행동으로 말입니다.
지혜롭고 유연한 토끼 같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 현재 제가 지향하는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버릇은 고쳐줘야겠지만요.)
"아버지란, 어린 자녀가 두려울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자, 세상이 커질수록 가장 그리운 존재다."라는 린다 포이트 빈의 말이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꽤나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저 딸아이가 올바른 길을 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노릇이든 역할이든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그전에 딸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 저부터 정갈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