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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아래서, 딸아이가 건넨 말

by 자향자

지난주 토요일, 아내가 회사 행사로 출근하는 바람에 오랜만에 딸아이와 단둘이 온종일 시간을 보내게 됐다. 평소보다 늦잠을 잔 아이와 느지막이 9시쯤 함께 일어나 단출한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일어나자마자 아이가 내게 건네는 말은 무엇이었을까?


"엄마는 어디 갔어?"

"응, 호떡이 맛있는 거 사주려고 돈 벌러 갔어."


엄마를 찾는 아이에게 슬쩍 대답을 흘리고, 아침에 서둘러 만든 꼬마김밥을 입에 쏙 넣어줬다. 벚꽃이 절정에 다다른 2025년의 봄날, 작디작은 아이 가방에 물 하나, 과자 몇 개를 주섬주섬 챙겨 넣고, 딸아이와 킥보드를 타기 위해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엄마도 함께였으면 좋았을 텐데. 대견한 건지, 애써 아닌 척하는 건지 아이는 엄마를 찾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 저기 갈까? 여기 갈까?"라는 말을 내게 건네며 못내 미안한 엄마의 마음을 달래주는 듯했다.



신나게 킥보드를 탄 뒤, 공원 근처 카페에 들렀다. 아이가 좋아하는 뽀로로 음료를 손에 쥐어주고,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해 두고 마주 앉았다.


"호떡아, 아빠랑 오랜만에 나왔네. 오늘 하루 재밌어?"

"응, 재밌어! 엄마랑 놀면 밖에 못 나오는데."

"응? 아니야, 엄마랑 더 자주 나오잖아."

"아닌데."


사실, 나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내는 아내에게 못내 미안했다. 어쩌면, '아이는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오래 기다려온 게 아닐까?' 아니면 '함께 하지 못하는 엄마가 미웠던 걸까?'



우중충해진 하늘을 보며 서둘러 카페를 나왔지만, 집에 채 가기도 전에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딸아이와 나는 비를 온몸으로 흠뻑 맞았다. 그렇게 녀석과 나의 또 다른 추억 하나가 생겼다.


"아빠랑 호떡이랑 비 맞았어."

"그러니까, 이거 다 추억이야. 얼른 집에 가서 씻자."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그날, 밖에서 행사에 참여하느라 고생했을 아내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날 나는 나 나름대로 아이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사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당연히 가족을 위해서겠지. 회사에 저당 잡힌 삶을 벗어나려 애쓰고 있지만, 갈증은 여전하다.



미국 역사 상 유일한 4선 대통령 플랭클린 루스벨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성공의 시작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본진부터 챙기라는 말일까.) 나는 이 말을 굳게 믿는다. 18개월 간의 동반 육아휴직으로 가정이 인생에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으니까.



'내 발로 걸어 들어간 회사에서 벗어날 방법, 어디 없을까?' 잠시 푸념을 늘어놓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와 바통 터치를 한 뒤 스터디 카페로 향했다.



생각을 실행하는 습관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만들어내리라 믿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딱 한 가지. 그저 꾸준히 실행하는 것, 그게 전부다. 벚꽃이 만개한 날, 딸아이로부터 새로운 동기부여를 받는다. 다시 시작이다. 녀석의 응원에 꼭 결과물로 보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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