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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지 마세요

by 자향자

"성실하지 마세요." 직장을 다니고 있는 회사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이제 갓 10년 차 직장 생활을 한 놈이 무슨 대인배 같은 말을 하겠냐라고 하겠다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절대 성실하지 마세요."



2016년 공무원에 입사했다. 지난 5년 간의 치욕적이고 처절한 백수 생활이 눈 녹듯이 사라지던 순간이었다. 사회초년생은 입사하면서 무슨 꿈을 꿀까? 내 꿈은 다음과 같았다. "여기서 임원까지 가보련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부모의 눈칫밥을 먹어가며 지내온 세월에 보답이라도 하듯 나를 간택해 준 회사였으니, 죽으라면 죽으라는 시늉도 하지 않았겠는가. 조직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다. 뼈를 묻겠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머리도 안 좋은 내가 선배들이 지나가며 한 두 번 알려준 공문서를 눈알이 빠지도록 들여다보며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쉬이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 날에는 보안 당번을 보내고 마지막 청사의 문을 닫고 나서는 나였으니 그 집념? 아니 오기만큼은 대단했던 나였다. (일을 잘해서 남은 게 아니라 일을 못해서 나머지 공부를 했다.)

상관이나 제 3자의 눈에는 책임감도 있고 성실해 보였을 테다.



덕분에 다른 동기들보다 조금 빠르게 승진할 수 있었다. 이 모든 내가 쏟아낸 결과물이라며, 자신만만하던 그 시절이 있었다. 그 일이 내겐 오히려 독이 됐다. 동사무소에서 2년 6개월의 시간을 보낸 후, 구청의 한 부서로 발령받았다.



서로 간에 합이 잘 맞지 않는 팀장의 비위를 맞춰가며 인정받으려 노력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대가였을까. 나는 입사 초기 내가 바라던 대로 총무과의 인사팀에 발령받게 된다. 그때만 해도 사실 몰랐다. 자만하던 내가 어떤 결과물을 받아들이게 될지.



'한글의 기역 그리고 니은도 제대로 하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문장을 읽게 만든다.' 이것이 핵심 부서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인수인계는 주말에 딱 1번, 그 다음부터는 8급 나부랭이가 모두 처리.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사무실에 들어가면 숨이 막히고, 머리는 멍해졌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경험이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내가 입사 후 처음으로 느껴본 중압감이었다.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리고 복무에 대한 규정은 어떻게 되는지 수도 없이 물어보더라. 그렇게 나는 백기를 들었다. 내가 살아남는 게 먼저였으니까.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회사에서 최대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게렝게티같은 사회로 나와 성공할 수 있겠냐'라고 말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그럼 가슴에 손을 얹고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했는가?'



나는 이 단계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리고 포기했다. 그럼 나는 낙오자가 된 셈일까. 나의 삶은 그 기점으로 다시 시작된다. 아내와 푸념 섞인 이야기가 줄어들었고, 입가엔 웃음이 맴돌았다. 시간이 지나 아내는 임신을 하게 됐으며, 그 녀석 덕분에 우리 부부는 동시에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그리고 나는 종이책 1권을 출간한다.



성실의 끝을 보여주며 조직에 충성을 맹세했다고 가정해 보겠다. 나에게 남는 건 대체 뭐가 있을까. 조금 더 빠른 승진? 사내 평판? 권력? 월급?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우물 안에서 느끼는 자기 위로적인 우월감 정도를 꼽아보게 된다.



조직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이들에게 내가 해줄 말은 없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다. 그들의 인내심 그리고 노력 모두 인정한다. 하나, 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적당히 성실하기로 했다. 회사에 목메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절대 나를 버리지 않을 것 같은 회사도 내 나이 60이 되면 퇴직문을 열어주며, 푼돈 얼마와 함께 나를 나가라고 등 떠민다. 잠깐의 자유를 느끼는 것이야 좋겠다만, 과연 그 이후 그 인생에서 남는 게 과연 뭐가 있을까.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회사에서 최대한 당당하게 살아간다. 모르면 말고 그리고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정 아니면 그만 두면 된다.'라는 심보로 회사를 다닌다. 한결 편안하다. 그 한 마디를 꾸준히 되뇌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변화한다. (절대 관두라는 이야기 아니다.)



우리는 회사가 아닌 스스로의 삶에 대해 성실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24시간을 농밀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하며, 오후 6시 이후 주어지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또렷하고 나를 성장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환갑의 나이에 내 인생을 크게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내 처량한 사내의 스토리를 들으니 어떤 생각이 드는가? 너는 너고 나는 다르다? 그럴지도 모르겠지. 그래도 이거 하나는 장담한다. 당신도 나도 60살 전에 모두 잘린다. 여러분 중심의 성실한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분명 크게 성장할 에너지가 있다. 이를 발견하는데 최선을 다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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