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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오랜만에 당직서는 날

by 자향자

7월 중순의 어느 날, 오랜만에 당직을 섰다. 육아휴직 전만 해도 두어 달에 한번 남자 공무원만 서던 당직근무는 복직 이후 남녀 공무원이 함께 근무하도록 규정이 변경되며 3달에 한번 서는 것으로 바뀌었다. 여성 공무원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다음 날 쉴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있는 지라 크게 불만은 없는 기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직근무는 언제나 그렇듯 달갑지 않다. 하루 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를 하고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요즘 같이 찌는 여름철 땀으로 범벅이 된 꿉꿉한 옷차림으로 밤을 새워야 하니 여름철의 당직근무는 내키지 않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볼 수 없음은 가장 큰 이유다.



당직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무겁다. 그날은 상위기관의 갑작스러운 오더에 오후 내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업무를 처리하다가 당직을 서게 됐다. 더불어, 당직 근무 시작 얼마 전 찾아온 민원인 또한 그날의 당직근무를 시작하기도 전 더욱 피곤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날 당직근무자라는 걸 알기라도 했을까?)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당직실에 들어섰다. 당직실의 무겁고 고요한 공기. 사무실보다 백만 배는 더 무겁다. 여기서 15시간을 버텨야 한다. 당일 만난 직원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5인 1조로 구성된 당직근무자들. 한 명의 당직사령관을 중심으로 그 아래 당직책임자 그리고 당직원 3인이 있다. 7급 공무원인 나는 언제나 당직책임자로 배정되어 있다. 사실 부담스럽다. 왜 그런고 하면, 민원이 발생했을 때, 무리 없게 처리를 해야 하는 것도 책임자의 역할 중 하나이기도 하고 당직 보고와 같은 문서 처리 등의 사안 또한 당직 책임자의 역할 중 하나이기 때문이겠다.



어쨌든 '당직을 신고합니다.'라는 보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왔다. 저녁 식사하러 가는 길,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있어? 호떡이는 뭐 해?"

"아빠!"


딸아이가 엄마 대신 대답한다. 엄마가 장난치는 모양이다. 아빠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간다며 딸아이에게 잘 자라는 짧은 인사를 전하고 아내와 통화를 마친다. 1시간 남짓 부여된 저녁 식사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고, 당직실로 복귀했다.



당직실에서는 별의별 신고가 다양하게 접수된다. 야간에 접수되는 신고는 주로 소음, 유기동물 관련 민원이 주를 이루는 편이다. 예전에는 쓰레기 관련 민원도 많이 접수됐었는데 요즘은 덜한 듯하다. 그럼 그날은 어땠을까? 오랜만에 당직을 서는 나를 배려해 주듯 그날 당직실의 전화기는 고요했다. 잔잔하게 몇 건의 전화가 오긴 했지만, 다행스럽게 긴급을 요하지는 않는 사안이어서 다행이었다.



이런 날은 사실 계 탄 날이다. 고요한 가운데 자투리 업무를 볼 수도 있고 책을 펼쳐볼 수도 있는 소중한 시간이 마련되기 때문이겠다. 이날 나는 책을 집어 들었다. 얼마 남지 않는 책 한 권을 완독 했고, 또 다른 책 한 권을 읽기 시작했다. (독서를 안 한지 한참이나 되어 내심 당직날을 기다리고 있기도 했었다.)



당직근무자 또한 일정시간의 취침시간이 보장된다.(우리도 사람이다.) 당직사령에게 보고 후 먼저 잠자리에 들기 위해 남자 숙직실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남자 숙직실 문이 열리지 않는 것. 최근에 경비시스템을 바꾸면서 새로이 반영된 데이터에 내 기록이 없는 모양이었다. 별 수는 없었다. 그 길로 사무실로 향해 잔업무를 몇 개 쳐내다보니 교대 시간은 금방이다. 어쨌든, 당직자들은 교대 형식으로 선잠을 자고 오전 5시즈음을 기해 다시 모인다.



그때부터 9시까지의 시간은 정말 죽도록 시간이 안 간다. 잠은 펑펑 쏟아지고 시계 분침은 느리기 짝이 없게 흐른다. 그렇게 꾸역꾸역 시간이 흐르고 시침이 9라는 숫자를 가리키길 손꼽아 기다린다. 너무나 고요하게 이번 25년의 3분기의 당직은 별 탈 없이 끝이 났다. 당분간 자유다.



50만 인구의 하룻밤 안녕을 위해 공무원은 당직을 선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름에 매사에 긴장하며 당직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무탈하게 흘러간 하루에 숨을 돌린다. 설령, 무슨 일이라도 발생하는 날에는 달려가는 게 우리 지방 공무원들 아니던가? 공무원이 '일을 안 한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들에게 당직을 설 수 있는 체험권을 선사해 주고 싶을 정도다. 공무원은 묵묵히 맡은 소임을 다할 뿐이다.



365일 당직실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어느 의자 한편에서 눈알이 빨개지도록 밤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 사실 하나 기억해 주길 바란다. 우리 또한 당신의 하루가 무탈하게 흘러가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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