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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일 못한다고, 당신의 인생마저 못난 건 아니다

by 자향자

출근길 계단을 오르며 문득, 또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다들 어디로 발령이 날까.' 그렇게 또 계절처럼 찾아오는 인사발령의 시기. 익숙한 것을 떠나 낯선 업무 앞에 서는 일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상하게 매번 처음인 것 마냥 두렵기만 하다.



우리 회사는 2년마다 직원을 다른 부서로 발령 낸다. 구청 내 타 부서로 가기도 하고, 동 주민센터로 이동하기도 하는 등, 그날의 고요하지만 뒤숭숭한 느낌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글쎄, 퇴사 후에는 그 감정이 조금 사그라 드려나?



사실 작년 이 맘 때쯤 복직을 한 내게 이번 인사 이동은 큰 의미는 없다. 그저 새로운 사람이 왔을 때, '내가 다른 팀으로 튕기진 않을까?'라는 두려움 정도가 내가 가진 감정의 전부다.



인사이동. 겉으로는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 거창하게 포장하지만, 실은 ‘다시 바보가 되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발령 직후 쏟아지는 일들을 수습하느라 첫 6개월은 늘 전쟁터. 정신없이 버티다 보면 1년이 훌쩍 지나가고, 드디어 익숙해진다 싶은 2년 차쯤이 되면 다시금 나는 낯선 부서로 향할 준비를 한다.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자마자 다시 이륙 준비를 하는 꼴이랄까.



그렇게 몇 번을 떠나고 머물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바보가 되었다가 조금 알 만하면 다시 바보가 되는 삶. 직장인의 삶은 어쩌면 이런 끊임없는 순환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나는 변화에 능숙하지 않다. 공무원이란 직업을 선택할 적에도 그랬다. 큰 변화 없어 보이는 조직. 그 안에서 그저 숨죽이고 작은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길 원했다. 그런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새로운 업무 앞에 늘 주저하고, 쉽게 지치곤 한다. 그래서 인사발령 시즌은 나에게 공포와도 같다.



그런데도, 결국 나는 어떻게든 해내곤 했다. 다만,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많고, 그저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오래 걸렸을 뿐이다. 심호흡을 하고, 하나씩 차근히 밟아나갔고, 그렇게 나는 다시 익숙함을 만들어냈다.



누군가는 새로운 일도 척척해내는 일을 나는 겨우 아주 간신히 2년을 버텨냈을 뿐이지만, 그 사실만으로도 내겐 충분하다. "회삿일 못한다고 당신의 인생마저 못난 것은 아니다."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언젠가부터 '완벽할 필요도, 빠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자. 무작정 일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닌, 충분히 고민해보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면 도전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면 포기를 선언하자. 그게 차라리 낫다. 회사는 당신의 고통을 책임지지 않고, 그 고통은 오롯이 당신에게만 전가될 뿐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내가 나에게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말은 아마 이 말일 것이다. "회사일 못한다고 당신의 인생마저 못난 것은 아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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