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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공무원이 제일 잘 어울려

by 자향자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거의 매일 출퇴근한다. 육아시간을 자주 사용하며 근무지 또한 지하철역에서 거리가 있는 아내에게 차량은 필수다.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지하철역과 근무지 거리가 짧은 내가 차량을 갖고 다닐 일은 없다. (차량 두 대를 굴리려면 돈이 얼마인가, 서울은 심지어 차 댈 곳도 없다.)



이른 아침 그리고 늦은 저녁 퇴근길, 차 안에서 스몰토크를 나눈다. 1시간 남짓의 짧지만 부부에겐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 왜 그렇게나 소중할까? 집에 들어서면, 딸아이는 엄마를 잡고 늘어지기 마련이고 행여나 나와 아내가 잠깐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금세 끼어들기 바쁘기에 좀처럼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이 시간을 통해 묵은 이야깃거리를 해소하곤 한다.



얼마 전,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최근 선거로 인해 격무를 치르기도 했고 회사 업무도 과중해지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탓에 '이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때즘 되면 항상 우리 아니 나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였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아내에게 포문을 열었다.


"여기 계속 다닐 거야?"

"응? 뭐."

"공무원 말이야. 나는 다닐수록 더 모르겠어"

"그렇긴 한데, 나는 좀 괜찮아진 거 같아"

"어떤 면에서?"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는 훌륭한 직장이라고 생각하거든, 남자 입장에선 모르겠지만, 여자 입장에선 사실

좋지. 당분간은 다닐 거야. 근데 왜 요즘 힘들어?"

"일도 어렵고 좀 그러네. 관두고 아니 휴직하고 싶다."


사실 뭣도 없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매번 꺼낸다는 게 나도 머쓱했다. 관두면 당장 무얼 한다는 건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본 것도 아니고, 그저 도피성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그득한 내가 무슨 책임감으로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말인가.



대차게 시작한 일도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하는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녀를 설득하기 쉽지 않으리라. 인정한다. 연이어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이 생각할 때, 나는 뭘 하면 좋을 거 같아?"

"흠. 공무원 (웃음)"

"에? 공무원?"

"응, 당신은 자신을 드러내고 이런 거 잘 못하는 성격이잖아. 당신은 공무원이 제일 잘 어울려.

꿈이 인플루언서라며 그래서 인플루언서 될 수 있겠어? (웃음)"

"조용하게 치고 나가는 인플루언서도 많아."

"그래? 어디 한번 보자고 크크"


결혼 8년 차 아내의 눈에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내게 찰떡 같이 맞아떨어졌나 보다. 하긴, 지지리도 힘들다고 아우성대고 아직까지 다니고 있는 거 보면 그럴 법도 하다. 물론 가정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다니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다들 그러리라 본다.)



조용하고 내성적이다. 드러내는 걸 싫어한다. 내 입으로 내 자랑을 하는 걸 어려워한다. 이 삼박자는 정녕 공무원이라는 직업과 딱 어울리는 말이 되기도 하겠다. 관운도 두 차례나 있었고, 무리하지 않은다면, 웬만하면 나이 먹어서까지 다닐 수 있다. 매력적인 것은 당연하다.



IMF급의 경제 위기가 닥친다느니, 양극화는 더욱더 심해진다니 하는 이야기들을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내기엔 나이가 꽤나 차 버렸다. 더욱이 딸아이까지 있으니, 무얼 어쩐단 말인가.



공무원으로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아내는 꾸준히 봐왔을 게다. 거의 10년이란 세월을 함께했으니 그럴 수밖에. 아내가 눈으로 본 것만 믿는 사람이라면 혹시 다른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고 성과를 낸다면 이 사람은 나를 인정할까? 못 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조금 더 짜임새 있는 삶을 전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사냐고 무리하지 말라는 아내지만 나답게 살기 위해 지루하게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끝에 달콤한 열매를 그토록 갈구하고 있다는 걸 아내는 알고 있을까.



한때, 프랑스를 대제국으로 만들었던 키작은 영웅 나폴레옹도 다음과 같은 말을 하지 않았던가. "성공은 인내와 끈기의 결과물이다." 끈을 놓지만 않는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해낼 수 있으리라 믿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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