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출근 할 때, 나는 거의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한다. 옷을 고르는 일도 이제는 귀찮은 일이 됐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도 어느샌가부터 피곤하게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근검절약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덕분에 내 옷장은 늘 단출했다. 초등학교 때는 두세 벌의 옷을 매일 같이 돌려 입었고, 중고등학교 때는 교복 덕분인지 옷이 부족해도 부모님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한이 맺혔던 것일까? 대학에 입학하며 옷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 대부분을 옷 사는 데 썼고, 싸구려 보세옷으로 옷장을 가득 채웠다. 인생 첫 아르바이트비로 당시 유행하던 청바지 하나를 18만 원이나 주고 사는 데 썼던 걸 떠올리면, 내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직장인이 된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봉 월급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옷들을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하나둘씩 구매하며 어린 시절의 아쉬움을 달랬다. 정말 원 없이 옷을 샀다. 내가 옷을 그렇게나 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과연 어린 시절 아쉬움 때문에 이렇게 옷을 샀던 걸까? 아니다. 나는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초라한 옷차림을 보고 누군가 속닥이지 않을까, 내 모습이 옷 하나로 판단될까 봐 늘 신경 쓰며 살아왔다. 어느새 옷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투자에 흥미를 갖게 되고, 가족 중심의 삶을 살아가며 내 삶의 우선순위는 변화한다. 옷을 한 벌 사느니 그 돈으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가치 있게 느껴졌고, 특히 아이와 아내를 위해 무언가 해주는 일이 더 만족스러웠다.
옷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보다 내면을 더 깊이 바라봐야 한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되기까지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목표가 확고하다면, 타인의 시선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나 자신에게 더 잘 보이려고 노력해야 할 때다. 더 이상 피곤하게 살지 말고, 오롯이 내 삶에 집중하자. 데일 카데기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말이나 새가 불행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말이나 새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이다."
배가 나오면 게으르다고 볼까 걱정하고, 차가 낡으면 비웃음을 살까 고민하고, 말을 하고 나면 주변의 반응을 신경 쓴다. 우리는 때때로 관객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처럼 살아간다. 피곤하지 않은가. 어차피 우리는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다. 일일이 마음을 주지 말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내 삶을 낭비할 필요는 전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