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하기 몇 달 전, 육아휴직이 끝나감에 대한 아쉬움과 추억을 기리고자 '카카오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총 30화로 연재된 나의 글. 일면식 없는 독자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연재한 대부분의 글 모두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간혹 어떤 글은 운이 따라줘 다음 포털사이트 메인에 오르는 날도 있었지만, 그 찰나의 순간뿐이었지 그 이상의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화되지 않은 소재를 다루기도 했고, 독자를 시선을 사로잡을 특출 난 필력을 지닌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오랜 기간 육아휴직을 했던 터라, 복직 후 한동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일이 힘에 겨웠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직장인 DNA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업무마저 한꺼번에 밀려드니 당해낼 제 간이 없었다. 마치 내 인생에 쓰나미와 같은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나만의 탈출구가 필요했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생각을 가다듬고 고칠 수 있는 시간이 절실했다. 그 탈출구를 나는 어떻게 마련했을까? 글쓰기를 시작했다. 블로그를 대나무숲 삼아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렇게 글이 하나씩 쌓여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로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야심차고 당돌한 생각을 하게 된 것.
그즈음, 아내가 무료 강의를 하나 듣고 와서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고명환이라는 강사가 언제까지 책을 쓰면 추천사 써준대!" 건너 듣는 듯했지만, 뇌리엔 정확히 꽂혔다. '고명환이라면 개그맨을 말하는 건가? 그 사람이 작가가 되었다고? 게다가 추천사까지 써준다고?'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리고 나는 당돌한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된 나의 글을 모아 원고를 만들기로 했다. 나만 간직하기 아까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보고 싶었다. '분명 어느 누군가에게는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출간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결심은 했는데, 이후 뭘 어디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사실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내가 준비한 것이라곤 출간 관련 도서를 몇 권을 읽고 인터넷을 찾아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눈에 담아낸 것이 전부였다.
결론은 아주 단순했다. 저명한 인플루언서도 아닌 내가 출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출판사에 직접 원고를 투고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됐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들러 어느 도서 맨 뒤 또는 앞 장에 있는 출판사 이메일을 수집해 한 땀 한 땀 직접 작성한 출판기획서와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수집한 출판사 이메일 리스트는 약 30여 개. 떨리는 마음으로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며 괜스레 뿌듯하고, 한편으로는 가슴 졸였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고 몇몇 출판사로부터 답장이 왔다. 당연하게도 거절의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등의 답장이 연속이었다.
당연한 일인데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얼핏 듣기로는 100여 개의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을 때, 1개의 출판사에서 긍정적인 회신이 올까 말까라고 하니, 편하게 그리고 꾸준히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나의 역할을 정했다.
어느 날, 한 출판사로부터 메일을 회신받게 된다. 긍정적인 회신이었다. 출간을 하고 싶다는 출판사의 제안. 어떤 식으로 원고를 다듬어 가면 좋을 지에 대한 상세한 피드백도 이어졌다. 예비작가인 내겐 실로 감동적이었다. 실력도 없는 나에게 기회를 준 해당 출판사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회신했다. '출간을 하고 싶다. 다만, 오프라인을 통해 찾아뵙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출판사가 어떤 곳인지 정말이지 궁금했다. 편집장의 긍정적인 회신에 맞추어, 하루 휴가를 내, 출판사를 방문하게 됐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예비 작가를 꿈꾸는 한 공무원 나부랭이가 지하철에 올랐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내가 연습한 바대로 말을 할 수 있을지 정리해 놓은 출력물을 다시금 주욱 훑어내려 갔다. 머리에 들어올 리 없었다.
출판사는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발걸음은 어느 작은 사무실에 다다랐다. 티브이 속에서나 보던 사무실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제 나름의 출판사 느낌이 제법 났다. 컴퓨터 앞에 앉아 출간될 책을 편집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편집장을 만나 내가 책을 통해 풀어내고 싶은 여러 이야기를 전했다. 당일 계약은 하지 않았다. 계약서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출판 계약을 한다는 설렘을 오랫동안 가져가고 싶었다. 편집장이 건넨 출판 계약서를 들고 사무실 밖을 나왔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출판 계약서를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 올랐다. 이렇게나 기쁜 소식을 아내에게 전하고, 지하철 어느 한 자리에 앉아, 출판 계약서를 읽어 내려갔다. 고요한 지하철 안에서 나는 분명 두근대는 심장소리를 들었다.
내 인생에 책 한 권 내는 일이 있을까? 싶었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날의 나는 정말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2024년 8월 여름의 어느 날, 출간을 꿈꾸는 30대 후반의 청년이 지하철에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현실로 바꾸어내는 모습을 보며 내 평생의 동반자인 지하철은 내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너, 오늘 최고였다.'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