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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뛰려고 지하철을 탑니다

by 자향자

새해가 시작되면 으레 우리는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가족의 안녕을 바라기도 하고, 개인의 소망을 이루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새로운 한 해의 첫발을 내딛는다. 나라고 별 다르지 않았다. 푸른 뱀의 해, 을사년, 나 또한 한 해를 보다 밀도 있게 보내고자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



여려 계획 중 하나가 내겐 달리기였다. 정확히는 마라톤. 정신없는 사회에서 잊고 지냈던 나에 대한 존재감 그리고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 마라톤 대회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그럼 나는 왜 많고 많은 운동 중에 굳이 마라톤이라는 운동을 선택하게 된 걸까? 끈기와 인내의 한계를 대변하는 종목이 마라톤이 아니던가.



쉽게 포기하고 물러나는 나의 성격을 다잡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사실 육아휴직 중 하프 마라톤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긴 했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단 한 달 만에 포기했던 게 문제였지만. 그날의 실패가 내겐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그날의 실패를 언젠가 덮어버리고 싶었다.



그러했다. 마라톤 완주를 해낼 수만 있다면, 포기를 밥 먹듯이 했던 내가 아주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과 다시 한번 자신감 있게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새해 첫날이 다가왔다. 나는 그 다짐을 곧바로 지켜낼 수 있었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매서운 한 겨울에 이불을 걷어차고 나와 달리기를 하는 일이 쉽진 않았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매일 아침 출근을 해야 하는 일정 탓에 몸이 쉽사리 움직여지진 않았다. 주중에 그렇더라도, 주말에 하면 되지 않았냐고? 내가 잘못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간간이 아내에게는 내게 물어봤다. "운동, 언제 할 거야?" "곧 할 거야"라고 응수를 놨지만, 몸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개나리가 피는 봄이 찾아올 무렵까지 나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2월의 어느 날, 여느 날과 같이 출근해, 업무를 보다 문득 달리기 생각이 났다. '그러게, 근데 달리기 언제 시작하지?'



그저 1분기가 지나지 않았다고, 도전할 수 있는 한 해는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다고 나 자신에게 핑계를 대고 있었다. 그 길로 나의 손가락은 바빠졌다. 마라톤 대회 일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가장 빠른 일정은 4월의 어느 날, 그렇게 나는 4월 중순의 마라톤 대회에 겁 없이 접수를 실시했다.



그런 생각이었다. 일을 저질러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에 머물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게 나의 지론이었다. 생각은 부정적인 생각을 낳아, 사람을 움직일 수조차 없게 만든다. 이를 늦게나마 꺠달았다. 그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러닝은 대회를 2주 코 앞에 두고서야 시작한다. 그것도 미루고 미루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던 그 시점에.



신청비로 낸 4만 원이 아까워서 이기도 했고, 이번 대회에 또 포기한다고 하면, 그보다 우스운 일을 없을 것 같았다. 10년 만에 다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실은 공무원 수험생 시절, 무너져 버릴 것 같았던 나의 마음을 다잡고자 한번 참가한 이력이 있긴 했었다.



3월 말의 봄, 내가 기대한 햇살이 내리쬐고 포근할 것만 같은 날씨와는 다르게 매서운 강풍이 몰아치는 날이었다. 바로 그날, 10년 만에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가장 컸었고, 한편으로는 '이것도 못하면 다른 거 아무것도 못하지'라는 마음도 들긴 했었다.



오랜만에 정말 심장이 터지도록 뛰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호흡을 짧게 가져가야 내달릴 수 있을 정도의 상태. 정신없이 오랜만에 뛰어댄 그날 나는 삶에 새로운 재미를 찾았다. 가슴이 두근대도록 무언가를 해본 건 실로 오랜만이었으니까.



대회를 코앞에 두고 있었고, 이른 출근에 늦은 퇴근이 일상이었던 지라, 대회 전날까지 사실 많은 연습은 하지 못했다. 그저 완주를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법했고, 그에 더해 좋은 기록까지 가져올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을 없을 것만 같았다.



대회 당일이 됐다.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이니만큼, 이른 아침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긴장감에 엊저녁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이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전날, 방 한편에 고이 깔아 두었던, 운동복을 주섬주섬 입고, 차가운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대회장으로 향했다.



4호선 지하철에 탑승했다. 주말 이른 새벽, 지하철을 타본 일이 있는가? 텅 빈 지하철을 타는 일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듬성듬성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 이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어딘가로 가고 있다. 주말에도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니, 실로 놀라웠다.



승강장 앞에서 대회장에서 심장이 쿵쾅대고 있을 나의 모습을 그리며, 금정역에 내려 1호선으로 환승했다. 그리고 다시 서울 한강을 향했다. 마라톤 복장을 한 이들이 하나둘 지하철을 탑승했다. 분명 대회장으로 향하는 이들의 모습이었다. 몇 시간 후면 이들과 함께 마라톤 여정을 떠난다.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이들이지만, 사실 반가웠다.



여의나루역에 하차해 마라톤 대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군중이 한 곳에 집결하게 됐다. 오랜만에 느껴본 대회장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요동치더라. 이런 기분을 느낀 건 언제였는지 사실 기억도 나지 않더라.



매서운 날씨였다. 초보 러너에게 이상적인진 않은 날씨, 강풍이 심하고, 기온은 봄 같지 않은 날씨. 마치 내 인생 같더라.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 법은 한순간도 없었다. 그 흔한 중학교를 가는데 1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남들 한번 가는 대학을 나는 두 번이나 갔다. 취업을 하는데만 5년이 걸려,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다.



사연 없는 이 없다만, 내 인생의 이야기도 어디 가서 비벼볼 만한 이야기는 되지 않을까? 끝났다고 말만 했지 사실 포기하진 않았다. 길이 있을 것이라며, 부단하게 무언가를 사부작댄 결과, 직장이라도 잡아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당일의 대회가 마치 내 인생의 풍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진심으로 달렸다. 저항하고 싶고 이겨내고 싶었다. 연습할 때보다 훨씬 더 빠르고 거친 호흡으로, 한 걸음씩 내디뎠다. (사실 8km 즈음 다다랐을 때, 딱 한번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내 개인 최고 기록으로 완주해 냈다.



진짜 후련하더라. 결국 나는 나를 이겼고, 그렇게 또 한 번 성장을 해냈다. 사실 아내는 할 수 없을 것이라 말했었다. 연습하지도 않았는데, 할 수 있겠냐고 말이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 중심은 나 자신의 마음가짐이다. 주변인들은 나 자신이 아니고, 그들은 나를 대변할 수 없다. 그들은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이 말은 성공과 실패는 온전히 자신의 의해서 결정된다는 말이다. 나는 이 날을 계기로 엄청난 자신감을 얻게 된다. 어떤 자신감을 얻었냐고? 더 멀리 내달릴 수 있는 자신감 그리고 끈기 있게 무언가를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 딱 두 가지다.



주말의 어느 새벽, 마라톤 뛰려고 지하철에 오른 공무원이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자기 자신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자 발걸음을 내디딘 공무원이 있었다. 이 날 지하철은 내게 무슨 말을 건네었을까? 늘 그래왔던 것처럼 '무탈하게 완주해. 응원할게'라는 말을 건네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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