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꿈에 그리던 마라톤 풀코스 완주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남은 거리 2km'라는 표지판이 눈에 훅 들어왔다. (보통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 2km 남짓의 구간마다 표지판을 세워 러너 자신들이 얼마만큼의 거리를 뛰었는지 대략적으로 알려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는 누구였을까. 단연코 가족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을 이날의 대회에 초대할 심산은 없었다. 그저 결승점에서 '나를 환대해 주는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정도가 내가 상상한 그림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감사하게도 아내는 흔쾌히 이날의 대회에 참여해 주겠단 의향을 밝혔고, 딸아이는 아빠가 실제로 뛰는 모습을 다시 한번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이벤트가 생겼다.
대회 날에도 그러했다. '아내와 딸아이는 결승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풀코스 마라톤. 너무나 지루한 시간의 연속인 지라 가족들에게 출발부터 배웅을 바라진 않았다. (이곳에 같이 와준 것만 해도 사실 감사했다.) 그저 대회 전날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을 뿐이었다.
"아마 5시간 정도 걸릴 거 같아. 재수 좋으면 4시간 반이고."
"그럼 언제부터 나가있어야 해?"
"흠, 출발이 8시 반이니까. 오후 1시 정도부터 와 있으면 될 거 같은데?"
"알겠어."
"왠지 주차 복잡할 거 같으면, 오지 말고."
"얼른 가기나 해."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나였지만, 사실 나는 그들을 간절히 기다렸다. 내 버킷리스트에 있던 어떤 장면이 있었다. 가족들 앞에서 결승점을 통과하는 장면. (멋지지 않은가.) 아내에게 멋진 남편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딸아이에겐 활력 넘치는 아빠의 모습을 녀석의 머리에 심어주고도 싶었다. 완주와 함께 결승점 부근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행운까지 주어진다면 2025년의 굉장한 추억 하나가 완성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결승점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큰 아쉬움은 갖지 않기로 했다. '그래. 무슨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김칫국 마시지 말자.' 사실 결승점 주변에 길게 늘어서 있는 누군가를 응원하기 위해 나온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동적인 일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마라토너였다. 무려 13회 이상 풀코스 마라톤을 완벽한 그. 주로 일요일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 덕분에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엄마에겐 잔소리를 듣기 일쑤였고, 나와 동생에겐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미안한 마음뿐이다. 한 번은 응원을 나갈 수 있었는데 말이다.
한편, 그즈음의 나의 러닝 시간은 얼마나 됐을까. 러닝앱의 알림이 내 귀에 박혔다. "거리 41km, 시간 4시간 얼마" 내심 기대했던 서브 4는 그렇게 신기루같이 사려졌다. 최선을 다해 달렸지만 결국 역부족이었던 셈이었다. 동력 자체가 떨어진 상황에 슈퍼맨과 같은 힘을 바라는 게 애당초부터 잘못된 생각이었겠지. 열심히 달려야 할 큰 유인은 더 이상 찾지 못했다. '완주만 하자.' 라며 한 걸음씩 힘겹게 발을 내디뎠던 게 당시 솔직한 내 감정의 전부였다.
그 순간, 저 멀리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결승점 조금 앞에서 두 팔 벌려 내게 손을 대차게 흔들고 있는 그들의 모습. 누구였을까. 아내와 딸아이였다. 세상의 모든 남편 그리고 아빠라는 존재는 그들 앞에서 위대해진다. 아니 적어도 위대한 척이라도 한다. 겨울철 배터리가 나갈 듯 말듯한 차량에 키를 꽂고 있는 힘껏 두 세 차례 돌리면 가까스로 시동이 걸린다. 당시의 내 모습이 그랬다. 다시 한번 내 몸에 키를 꽂고 있는 힘껏 끝까지 돌렸다. 부릉부릉.
"자향자. 자향자."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살아생전 이토록 가슴 설레는 일이 또 있었을까. 아내의 응원에 발맞추어, 나를 발견하고 한달음에 있는 힘껏 달려오고 있는 딸아이. 그 모습 앞에 세상의 모든 아빠라면 다시 힘을 낼 유인을 어떻게든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들에게 성큼성큼 다가섰다. 세상 떠나가라 소리 질렀다. 그 순간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었을까.
딸아이에 손을 내밀며 하이파이브를 했고 사랑하는 아내에겐 내 나름의 사랑 표현을 하며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딸아이는 자기의 최고 속력으로 나를 따라오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고 한다.) 저 멀리 결승점이 보였다. '이제 진짜 다 왔다.' 멘털은 사실 반 이상 나가버리고,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금방이라도 부서져버릴 것 같은 유리몸과 같은 상태였다만, 다시 생각해 봐도 결승점을 통과한 그날의 나는 최고 멋진 사람이었다.
결승점을 통과한 기분 어땠을까. 어느 러너가 말한 것과 같이 화려한 감정은 없었다. 그저, 그날만큼은 이제 더 이상 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첫 번째였고 당당하게 가족들 앞에 설 수 있다는 마음이 전부였다. 생존을 위한 본능과 자아실현이라는 감정이 교차했다고나 할까. 어쨌든 나는 이날 나를 완벽하게 이겨냈다.
피니쉬 통과 후, 다시 가족들을 만났다.
"여보, 나 해냈어."
"우와, 진짜 했네? 말도 안 돼 ㅋㅋ"
"딸, 아빠 해냈어."
"꺄아."
환대해 주던 그들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완주 메달을 딸아이의 목에 걸어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뭘까. 나는 나를 위해 달렸던 걸까.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달렸던 걸까.' 정확히 무얼 하나 콕 찍을 순 없겠다만, 분명한 건 두 가지 모두 달성했다.
4시간 6분 29초. 인생 첫 풀코스 마라톤을 뛰면서 내가 얻어낸 결과물이다. 고대하던 서브 4는 비록 물 건너갔지만, 계획했던 목표는 무려 24분 이상 앞당기며, 2025년 계획했던 모든 마라톤 대회를 큰 부상 없이 마무리하게 됐다. 2025년 나는 나의 뇌를 완벽하게 속였다. 올해만큼은 내가 분명한 승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