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4, 가능한 일이었을까

by 자향자

"도저히 못 뛰겠다. 너무 힘들어."


35km 지점에 닿았을 때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고작 8개월 남짓이라지만, 이제껏 러닝을 해오면서 이런 고통을 겪어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극한의 극한이었달까. 내 한계에 다다랐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어느 시조에 '넋이라도 있고 없고' 그 말이 딱 맞았다.



사실 이 모든 건 내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간 풀코스 연습을 충분히 하지 못했던 탓에 벌어진 일이었고, 한편으로는 대회 빨로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요행을 바랐던 나의 욕심은 결국 나를 35km 지점에서 멈추도록 만들었다. 하늘이 나에게 호된 꾸지람을 선사한 것만 같았다.



그런 나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듯, 자연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갈대밭 사이로 불어대는 산들바람을 등에 업고 이후 3km를 내리 걸었다. 사실 나 홀로 걷고 있는 건 아니었다. 내 앞에 어느 누군가도 걷기 있었고, 저 멀리 한편에선 외곽에 앉아 쥐가 바짝 오른 종아리를 주무르는 러너들의 모습도 눈에 보였다. 그들만의 싸움을 하는 게 분명했다. 다시 생각해도 35~38km는 가장 고통스러운 구간임이 확실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마라톤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자랍시고 포기는 죽기보다 싫어 걸어서라도 풀코스 꼭 완주하리라 출발 전부터 마음먹었었다. 참고로 그날 대회의 풀코스 제한 시간은 5시간이었다. (다른 풀코스는 얼마 인지 모르겠다.) 이 말은 만약 5시간이 지나 결승점을 통과할 경우, 완주 메달은 받을 수 있지만 별도의 기록증은 지급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기록이 없다는 건 참가자로써는 꽤 아쉬운 부분이다.)



그날 내가 걸었던 3km는 마치 30km 같았다. 급수처는 대체 언제 나오는 건지 결승점은 언제 보이는 건지 홀로 되뇌며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깨워갈 무렵, 동시에 참가자들은 하나 둘 나를 제치며 나아갔다. 나와 점점 멀어져 가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겸손이란 단어를 다시 배웠다. 그들의 포기하지 않는 멋진 러닝에 감탄했고 동시에 별거 아닌 나 자신 또한 발견했다. (세상에 잘 뛰는 사람들은 정말 많았다.)


'이날을 위해 그들은 얼마나 연습을 해왔던 걸까.'

'분명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을 텐데, 어떻게 그들은 달리기를 계속하고 있는 걸까.'


인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버무려지며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어느덧 응원단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완주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소리였다. 손목시계로 눈길이 자연스레 흘러 들어갔다. 러너들은 모두 각자 목표한 시간 내 결승점을 통과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시간을 살핀다. 그럼 나의 목표는 얼마였을까? 4시간 30분이었다. 첫 마라톤 완주가 나의 가장 큰 목표였으니 그 이상을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기도 했다.



러닝 시간 3시간 43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리 3km를 걸으며, 본래의 목표 시간은 포기했던 나였다.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서브 4(4시간 안에 완주)도 가능하지 않을까?' 남은 4km를 17분 안에 주파할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첫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서 4시간 안에 들어올 수만 있다면 내 입장에선 대단한 성과로 남을 일이었다. 포기할 찰나에 새로운 동력원이 생겼다. 주유등이 깜빡이는 앵꼬난 차량에 휘발유가 들어왔달까. 입술을 질끈 깨물고, 20km 중반부터 손에 꼭 쥐고 달렸던 물병을 마지막 급수대에 고스란히 내려놓고 전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그로기 상태에 빠져있었던 내게 생기를 불어넣어 준 변곡점이었던 셈이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익숙한 전망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가족이 묵었던 숙소 주변에 위치한 전망대였다. 이 말인즉슨, 조금만 더 달리면 꿈에 그리던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어느덧, 이른 새벽 출정을 위해 대회장을 걸어오던 익숙한 길도 드디어 나타났다. 마지막 스퍼트를 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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