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km의 벽 앞에 무릎을 꿇었다

by 자향자

반환점에 거의 다다를 무렵이었을까. 누가 내 발에 모래주머니라도 달고 도망간 듯, 조금씩 발이 무거워졌다. 러닝 연습 중 조금씩 부담될 때 즈음이면 늘 나타났던 증상. 이 녀석이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그것도 내가 그토록 꿈에 그리던 마라톤 대회날 말이다.



그 느낌이 반환점을 채 돌기도 전에 나타났다는 게 아쉬웠다.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연습 시에도 30킬로까지는 뛰어봤던 경험이 있었는데, 18~19km 지점부터 발이 무거워지기 시작하다니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았다. 마음은 평온하다 말했지만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대회장 분위기를 업어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던 걸까. (모두 맞는 말이다.)



잡스러운 생각이 밀려들 무렵 드디어 반환점을 돌았다. 남은 거리는 21.0975km. 지금까지 달려왔던 만큼의 거리를 다시 한번만 달리면 꿈에 그리던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용기' 하나만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끝까지 달릴 수 있을까?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하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가능하다. 하지만, 지옥의 레이스도 동시에 펼쳐짐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체력이 고갈되어 갔다. 나름의 자신감이 있었다만, 머릿속에 그려왔던 계획보다 훨씬 이른 지점에서 체력이 바닥나는 상황을 맞으니 당황스러웠다. 대회 분위기에 휩쓸려 초반부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탓이었다. 청량한 하늘도 멋진 갈대숲의 풍경도 이즈음부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는 거리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한편, 풀코스 마라톤의 진검 승부는 어느 구간에서 이루어질까? 30km 지점부터다. 해당 거리부터는 정신력과의 싸움이며, 서서히 진짜 러너들이 나타나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이 지점부터 압축했던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한달음에 치고 나가기 시작하고, 또 다른 이는 나와 같이 슬슬 퍼지기 시작한다. 나는 이 구간을 숙련자와 초보자의 교차점이라 부른다.



나는 어떤 상태였을까? 여러분이 예상한 바와 같이, 오른발엔 천근, 왼발엔 만근의 모래주머니를 달고 한 걸음씩 내디뎠다. '할 만큼 했어. 이제 그만 쉬어.'라는 악마의 속삭임도 동시에 들렸다면 여러분은 믿어줄 텐가. 야심 차게 준비해 간, 에너지 젤 하나를 까먹으며 다시 한번 힘을 내봤다만 상품 광고와 같이 에너지가 솟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간 하프 마라톤 대회를 참가하면 급수대는 일절 찾지 않았다. 그런 내가 이날 20킬로 구간 이후부터는 2.5km 구간마다 설치되어 있는 급수대를 매번 들렀다. 맞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풀코스의 마지막 반환점은 나를 꽤 지치게 만들었다. 오르막길은 거의 걷다시피 했으며 속도를 낼 수 있는 내리막길도 다리에 힘이 풀려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었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일까.'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무렵 드디어 30km 지점을 지났다. 이 이상의 거리를 연습 시에도 달려본 적은 내 생에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로기 상태. 누군가에게 한방을 맞으면 그대로 쓰러져 버릴 것 같은 상태였다. 지옥과 같은 고통이 있다면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다시 힘을 내보겠다며, 달리는 둥 마는 둥 하던 나의 발걸음은 35km 지점에서 멈춰 섰다.



"못 뛰겠다. 너무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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