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의 "출발"이라는 힘찬 소리와 함께 나의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 여정은 시작됐다. 목표는 5시간 내 완주하기. 조금 더 욕심을 부려 4시간 반 안에만 들어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당일 날씨는 어땠을까? 초겨울에 이제 막 접어든 11월 초라지만 늦가을을 만끽할 수 있을 만큼 날씨는 온화했다. 한마디로 달리기 하기에 제 격인 날씨였다.
수많이 사람들이 좁은 길 하나를 빠져나가기 위해 몰려들었다. (어느 대회든 병목 구간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실 초반부 병목 구간에서 선두권에 자리 잡지 않는 이상 러너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없다. 그저 주위를 둘러싼 이들이 나를 얼른 제치고 나가길 바라는 기도하는 게 제일 마음 편하다. (이제까지의 내 경험은 그러했다.)
초반 병목 구간을 지나고 나니 시야가 조금 넓어졌다. 달리기 하는 이들 간의 간격도 내 마음에도 조금은 여유가 생긴 것만 같았다. 저 높이 떠오른 새햐얀 뭉게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속으로 외쳤다. '날씨 오늘 정말 최고네. 이런 날씨에 마라톤 대회에 나오게 되다니 행운이다.' 참고로 2025년 총 5번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는데, 이날의 대회는 날씨는 정말이지 최고였다.
그날은 이상하게 평온했다. 하프마라톤을 뛸 당시엔 2025년의 목표를 도전하는 입장이라 무척이나 가슴이 요동쳤는데 당시엔 무모한 도전이라 생각했는지 심장이 크게 나대는 일은 없었다. 정말이지 의외로 평온한 상태로 레이스를 펼치게 됐다. (잃어도 손해 볼 것 없는 느낌이었다.)
한편 나는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위해 나는 어떤 전략을 세웠을까? 별다른 고민은 없었다. 그저 일전에 아버지가 내게 준 러닝 팁을 그대로 따라 하기로 했다. (참고로 아버지는 마라톤 풀코스를 13회 이상 뛴 마라토너다.) 당신이 말하길 20킬로 까지는 무리하지 않고 평이한 속도로 주행하고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속도를 붙여 밀어붙이면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었다.
그럼 아버지가 내게 전수해 준 팁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됐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 초반 병목 구간을 통과하고 조금 넓은 도로로 나왔을 무렵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역시나 대회장 특유의 분위기 덕분이었다. (옆에서 뛰면 나도 뛴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20킬로 구간까지는 자신 있었다. 아무리 못 달려도 매주 20킬로는 꾸준히 연습을 해왔던 나였기에 해당 거리까지에 대한 저항은 크게 없었다. 그 이상부터가 문제였을 뿐이었다.
앞서 말했듯 러닝 하기 최고의 날이었다. (그토록 좋은 날씨의 대회가 내게 다시 찾아올까.) 새파란 가을 하늘 아래, 시골의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수천 명의 러너들이 결승점 단 한 곳을 향해 다 함께 내달리고 있다. 한번 상상해 보라. 멋지지 않은가. 초반 병목구간에서 지체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조금씩 속도를 높였던 것이었다.
알다시피 마라톤은 페이스 조절이 관건인 스포츠다. 시의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하면, 레이스 후반부에 분명 퍼지게 되어있다. 이를 알면서도 무리하게 달렸다. 늘 그래왔듯 대회장이 전하는 특별한 분위기가 나의 체력도 잠시나마 높여줄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 속도가 붙으며 시간은 단축됐다. 한번 붙은 추진력이 좀처럼 제어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대회빨(?)을 믿고 나아가 보기로 했다.
초짜 마라토너에 불과하지만 나는 부여 굿뜨래 마라톤 대회의 코스 괜찮았다. 경사도가 크게 높은 곳도 없고, 지루한 직진 코스만 있는 것도 아니며 무성한 갈대밭 등 풍경도 꽤 볼만하다. 그런 여러 조건이 나를 그렇게 치달리게 만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첫 번째 반환점을 앞둔 18~19킬로까지 정말 이상하리만큼 순탄하게 레이스를 펼쳤다. 이 정도 페이스라면 김칫국이지만 꽤 멋진 기록으로 완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