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장소, 부여

by 자향자

충청남도 부여군.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역사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인구 6만의 소도시에서 나의 인생 첫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춘천, 동아, JTBC 등 내로라하는 메이저 대회가 즐비하건만, 나는 왜 굳이 경기도에서 충남까지 130km 떨어진 곳에서 내 인생 첫 번째 마라톤 풀코스를 하려 했던 걸까?



큰 이유는 없다. 그저 메이저 대회는 접수를 하더라도 당첨이 되어야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불확실성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유독 사악하기 그지없는 참가비 덕분인지 유독 그쪽으로 눈길이 가지 않았다. 청개구리과 같은 성격과 함께 눈에 띄지 않는 공간에서 사부작 거리기를 좋아하는 내 이상한 성격 탓도 한몫했을 것이다.



부여 굿뜨래 마라톤 대회. 매년 충남 부여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지역 마라톤 행사로 올해 14회째를 맞이했다. 나름의 전통이 있는 대회인 셈이었다. 참고로 굿뜨래라는 이름은 부여 특산 브랜드명이다. 이 날의 대회를 위해 우리 가족 모두가 총 출동했다. 본래 홀로 조용하게 대회에 참가할 심산이었다만, 이번에도 아내는 현장에서 나의 완주를 응원해 주기로 했다.



딸아이는 여행을 간다는 설렘, 아내는 남편의 완주를 응원하는 마음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일말의 두려움 하나 그렇게 각자의 생각을 한데 안고 결전의 장소 부여로 향했다. 사실 부여라는 곳은 소싯적 아내와 연애를 하면서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연꽃이 만개한 궁남지를 보러 갔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있는 그곳 부여. 그곳은 여전할까? 그리고 이번 방문을 통해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을까? 모든 게 궁금했다.



집에서 130km 떨어져 있는 부여까지 홀로 운전대를 잡고 갔다. 주중 힘든 일과를 마치고 쉬는 게 나았을 법도 한데, 모든 일정을 미뤄두고 응원을 나와준다는 것 자체에 감사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내가 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고.) 사실 그들이 응원을 와주길 바랐던 건 사실이었다만, 그건 그저 나만의 욕심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나의 생각을 읽어낸 아내는 뭐랄까. 내 머리 위에 있는 사람이다.



이동 중, 차 안에서 아내가 내게 그런 말을 꺼낸 기억이 난다.


"내일 무리하지 마."

"응?"

"연습 충분히 못 했잖아. 힘들면 그냥 거기서 멈춰. 올해만 대회 있는 거 아니야. 몸이 최우선이다?"

"알겠어."

"내가 데리러 갈게"

"크크크. 고마워."


겉으론 알겠다고 그녀에게 답했지만, 끝까지 완주하고픈 마음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내의 말은 사실 틀리지 않았다. 고작 일주일에 한 번 연습으로 풀코스에 도전한다니 가당치도 않았다. 대회는 매년 각지에서 수십 차례 열린다. 굳이 여기에 목을 메달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도 사실 완주는 꼭 해내고 싶었다. 아내와 딸아이 앞에서 여봐란듯이 완주하는 모습을 계속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나였으니까.



생각보다 부여로 가는 길은 꽤 멀었다. 중간에 휴게소 한 곳에 들러 주전부리도 먹고, 쉬엄쉬엄 가다 보니 어느덧 한낮의 오후에야 부여에 입성할 수 있었다. 결전의 장소, 부여를 들어와 제일 처음 방문한 곳은 어디였을까? 다름 아닌, 부여국립박물관이었다. 나의 마라톤 대회를 위해 이곳을 방문하긴 했다만, 아이 또한 자기만의 여행을 꿈꾸며 이곳으로 온 것이었을 테니 그 녀석에게도 일말의 추억 하나는 선사하고 싶었다.



국사 책에서만 보던 금동대향로를 직접 눈으로 보기도 하고, 레이저쇼와 같은 멋진 공연도 함께 즐기며 또 하나의 추억을 그곳에서 남겼다. (딸아이는 기억하려나 모르겠다.) 무어가 그리 신났는지 딸아이가 연신 웃어대는 바람에 여행을 하러 온 건지 달리기를 하러 온 건지 살짝 헷갈리기도 했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숙소로 향하는 길 대회장에 잠시 들렀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대회장, 백마강을 주변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코스 옆으로 갈대가 무성하게 솟아 있다.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마라톤 코스였다. 단 하루만 지나면 이곳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레이스가 펼쳐진다니 설레더라. 출발선에 서있는 내 모습 또한 자연스레 그려졌다. '내일 나는 어떤 결과물을 받아들이게 될까. 아내 말대로 중간에 퍼져버리려나. 아니야.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완주는 하겠지.' 별별 생각이 교차했다.



이 날을 위해 6월의 어느 날, 호기롭게 마라톤 대회를 접수하고 한 여름날 더위도 먹어가며 맹연습을 했다. 30km까지 뛰어본 게 내 실력의 전부라지만, 마라톤 대회 특유의 분위기를 등에 업어 완주하고픈 욕심이 샘솟았다. 그날 우리는 자그마한 게스트 하우스 한 곳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잘 자라'는 아내의 말을 자장가 삼아 시골 녘,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배경 삼아 부푼 꿈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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