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왜 웃지 않을까

by 자향자

2016년 9월의 어느 토요일. 박성수는 약속 장소에 12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홍대 근처 카페였다. 2층짜리 건물에 나무 간판이 달린 곳. 아는 직원에게 물어물어 알게 된 인스타에 올라오는 어느 한 카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소개팅 장소는 늘 그에게 그래왔다. 기억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온데간데 사라져 버리는 그런 곳.



오늘부로 여섯 번째 소개팅이었다. 성수는 창가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아메리카노 6,500원. 라테 7,000원. '왜 이리 비싸.' 성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했다.



그리 비싼 걸 마실 기분은 솔직히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비싸다는 걸 마셔도 특별히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하는 기분은 없었다. 커피는 그냥 동네 옐로 브랜드에서 파는 커피 한잔이 그에겐 언제나 최고였으니까.



창밖을 지긋이 바라봤다. 토요일 오후 2시, 그날따라 유독 홍대 거리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커플이 그의 눈에 그렇게나 많이 들어왔다. 손을 잡고 다니는 커플, 벤치에 앉아 남자의 한쪽 어깨에 기댄 이들까지 다들 이날의 데이트를 위해 한껏 꾸미고 나온 모습이 성수는 왠지 모르게 부러웠다.



입이 마른 성수는 테이블 앞에 있는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소개팅의 그녀는 3분이나 늦게 왔다. 그녀의 이름은 한지영. 나이는 성수보다 세 살 아래. 같은 구청, 어느 과에 다니고 있는 공무원이었다. 소개는 성수의 어머니가 아는 한 지인의 딸이라는 게 그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꽤 복잡한 경로였다. 뭐 어떠랴. 소개팅 경로는 차라리 복잡한 게 낫다.



한지영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며 두리번거렸다. 성수가 쭈뼛거리며 어색하게 손을 들었다. 그녀가 차분히 걸어왔다. 첫인상은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키는 160cm 정도 되어 보이고 머리는 단발에 화장은 그리 진해 보이지 않았다. 베이지색 블라우스에 청바지. 들고 있는 가방은 작고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박성수 씨죠?"

"네, 안녕하세요."

"늦었죠? 죄송해요. 버스가 말썽이었네요."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어요."


12분이나 일찍 도착한 그지만 선한 거짓말로 대신한다. 사실 그 말은 매번 소개팅 자리에서 으레 하는 말이었다. 어차피 그 어느 쪽도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지영은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훑었다. 성수는 그 짧은 찰나의 시간에 그녀의 표정을 관찰했다. 그녀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보통 소개팅 자리에서 여자들은 웃어주는 편이었다. 비록 어색하더라도 적어도 분위기를 풀려는 시도는 했었다.



지영에겐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그냥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마치 내가 당신 앞에 있는 것도 모르는 것 마냥, 아주 진지하게. 라테를 시킬지 녹차를 시킬지 실제로 고민하는 사람 같았다.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보다.‘


주문을 마치고 그새 침묵이 찾아왔다. 다섯 차례나 소개팅을 했지만, 여전히 성수에게 이러한 침묵은 항상 어렵기만 하다. 성수는 그 어색함을 메우는 데 소질 같은 건 없었다. 다섯 번의 소개팅에서 배운 건 퇴짜 맞는 기술 빼곤 하나도 없었다. 결국 지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같은 구청이라고 들었어요."

"네, 주민복지과요."

"저는 세무과예요. 얼굴을 본 적 없네요."

"건물이 달라서겠죠."

"아, 맞다. 별관이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가 뚝 끊겼다. 성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속으로 머리를 뱅뱅 굴렸다. '날씨 얘기를 해야 하나? 아니면 일 얘기를 더 해야 하나, 아니다 취미를 물어볼까?" 다시 지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공무원 된 지 얼마나 됐어요?"

"4년 됐어요."

"저는 3년이요... 힘들죠?"


성수가 순간 멈칫했다. 보통 그런 질문엔 "뭐, 그냥 그렇죠. 혹은 익숙해지더라고요."라는 대답을 하기 마련이었다. 소개팅 자리에서 본인의 일이 힘들다고 속 터놓고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나.


"가끔요." 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는 자주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짧은 대화를 마치는 사이 음료가 나왔다. 지영은 녹차 라테를 주문했다.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으며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어머님이 저한테 박성수 씨 많이 칭찬하시던데."

"무슨 칭찬요?"

"성실하고, 조용하고, 속 썩이는 일이 없다고."


성수는 쓴웃음이 지었다.


"그게 칭찬인지 모르겠네요."

"저는 칭찬 같던데요."

"남자한테 그 말은 좀."

"왜요?"


성수는 잠깐 생각하고 이어 말을 뱉었다.


"뭔가 특별한 게 없다는 말 같아서요. 사실 뭐 그렇기도 하지만."


지영이 처음으로 짧은 웃음을 지었다. 소개팅 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위기 맞추는 웃음은 아니었다. 뭔가 그 말이 좀 재밌다고 생각했나 보다.


"저도 그 말 많이 들어요. 성실하고 조용하다고."

"음. 지영 씨도 그게 싫어요?"

"모르겠어요."


잠깐 창밖을 봤다 다시 성수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사실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사고 안 치는 사람이 요즘 얼마나 귀한데요."


성수는 그 말을 들으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처음으로 이런 소개팅 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 둘 사이에 별다른 화제는 없었다. 직장 얘기, 동네 맛집 얘기, 부모님 얘기까지.



꿈이 뭐냐는 거창한 질문이나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은 없었다. 그냥 두 사람은 세상 돌아가는 별 것 없는 얘기를 이어갔다. 어느 순간 성수는 자신이 지영보다 많이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직장에서는 절대 하지 않는 말들. 예를 들어, 공무원 생활이 생각보다 외롭다는 것과 잘하고 있는 기준을 도통 모르겠다는 그런 것들을 가감 없이 내뱉고 있었다. 그 또한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도통 몰랐다.



정말 웃긴 건, 지영은 이를 끊지 않고 들어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와 중에도 맞장구를 치거나 위로 따윈 없었다. 그저 들어주기 위해 나온 게 오늘 그녀의 소개팅 미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카페를 나설 때 즈음엔 어느덧, 해가 기울어 있었다. 카페를 나오는 찰나, 성수가 용기를 내 말했다.


"저녁 드시고 가실래요?"

"밥 먹으면 길어지는데."

"괜찮으면요."

"좋아요."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어디 갈지 정하지도 않은 채로 나란히 홍대 거리를 거닐었다. 수많은 군중 사이 그들의 모습은 평이하기 그지없었다.



가벼운 저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성수는 버스에 앉아 스마트폰을 메 만지며 소개팅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그러곤 서로 보폭을 맞추어 한 걸음씩 걸었던 사실을 기억했다. 그 장면만큼은 또렷했다. 그날 밤 원룸에 돌아와 성수는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어땠어?"

"괜찮았어."

"그게 다야?"

"응, 그게 다야."

" 그래, 알았다."


어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성수는 전화를 끊고 천장을 쳐다봤다. 어머니에겐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괜찮았다.'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여섯 차례 소개팅을 하면서 처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이 아쉬운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성수는 몰랐다. 초가을의 9월, 창밖엔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불어댔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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