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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l 31. 2024

어리바리한 7급 공무원

'7급 공무원'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어느 정도 짬밥을 먹고 업무 처리에는 어느 정도 능숙한 정도의 공무원'  또는  '삶에 안주하며 업무에 태만한 공무원' 이미지 정도 떠오를 수도 있겠습니다. 7급 공무원은 사기업으로 치면 과장급의 사원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보통 7급 공무원까지는 연공서열에 의해서 차례로 승진을 시켜주는 편입니다. 공무원 업무의 특성상 성과에 대한 뚜렷한 측정이 불가해 별다른 이슈없이 맡은 소임을 잘 해낸다면 무리 없이 7급까지는 속도감 있게 갈 수 있는 거죠. 그렇게 7급 공무원이 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9급과 8급 때와는 다른 결의 업무를 맡게 됩니다. 조금 더 무겁고 어려운 업무를 맡게 되는 거죠. 수월한 업무만 하다가 단계 없이 바로 맡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회가 다 그런 거라고 하니 그러려니 하지만 정작 본인이 그런 업무를 맡게 되면 '멘붕'이 올 수도 있어요. 실제로 제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커서 '부서 부적응자'로 이탈한 사례도 있었으니까요.



1년 6개월의 육아휴직 후 회사로 돌아오니 그간의 경력이 쌓여 다시금 난도 있는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처음에 복직한 과에 오게 됐을 때 "어? 너 거기 갔어? 어떡해." 라면서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구청보다 동사무소에 오래 근무를 했던 저로써는 의아했는데 단 이틀 만에 주변에서 왜 그랬는지 알게 됐습니다.



타 부서에 비해 '민원의 강도'가 상당한 부서였기 때문입니다. 보통 공무원 사이에서 속칭 '좋은 부서'라 함은 승진이 빠른 부서 예를 들어 총무나 기획 부서, 구청장 공약 사항이 있는 부서 정도를 지칭하고요, '안 좋은 부서'라고 말하는 곳은 '주민을 많이 상대하는 부서' 예를 들어 교통이나 청소 관련 부서가 해당이 됩니다.



제 기준에서는 안 좋은 부서가 아니었으니 '뭐 나름 괜찮네' 하면서 복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특히 '돈'과 관련된 부서는 굉장히 거친 민원인들을 만나는 게 필연적입니다. 그런 부서에 갔으니 말 다한 거죠.



업무에 대한 숙지가 제대로 안 돼있는 상태에서 민원인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말 한마디가 굉장히 조심스럽고 어떤 가이드를 제시해줘야 할지 판단이 오롯이 서지 않더라고요. 까딱하면 더 큰 민원으로 번질 수도 있으니까요. 확인에 확인을 더하고 나서야 조심스러운 답변을 개진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컴퓨터에 앉아 바뀐 시스템을 접하는 것도 또 다른 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쉬다가 오니 전자결재하나 올리는 것도 틀리기 일쑤였습니다. 회수하고 다시 올리고를 반복합니다. 옆 직원에게 계속 물어보기도 하면서 하나씩 해내긴 하는데 쉬운 건 역시나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어리바리한 7급 공무원'으로 회사에 돌아왔습니다. '어리바리'라는 말을 지우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도 같습니다. 마치 운전하는 법을 잊어버려 다시 운전연수를 받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전체적으로 그림이 안 그려지니 답답한 마음입니다. 실제로 마음이 다른 곳에 있기도 하고요, 버거운 업무와 민원에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어리바리한 7급 공무원'임에도 알게 모르게 몸으로 습득한 일련의 습관들은 남아있었습니다. 전화 응대하는 방법이라던지 상관에게 보고하는 습관이라던지 이런 부분은 오히려 더 능숙해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공무원은 상관에게 지속적으로 보고하는 게 원활한 업무 진행을 위한 필수사항이자 자신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위에 언급한 두 가지 외 제가 다시금 일을 하면서 느끼게 된 의외의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회사 생활에 임하는 제 마음가짐'입니다. 1년 6개월 동안 육아를 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세상에는 '직장인'으로써만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입니다. '회사 생활은 내 인생의 과정 중 하나 일 수도 있겠다'라는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이런 마음가짐이 제 회사 생활을 조금 더 수월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건 맞으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정도로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어쩌면 회사는 멋진 제 인생을 만들어가는 과정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스텝을 밟기까지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만약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인일 경우 '지금은 일련의 과정이다'라는 마음가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좀 더 강하게 말씀드리면 회사에 온전히 모든 것을 쏟지 말라라고 말씀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회사는 당연히 업무에 포커스를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당연히(?) 결과물을 만들어내야하니 닥달할 수밖에 없어요. 그 안에 직장인인 저희는 부속품에 불과하고요, 잔인하지만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인력들입니다. 무조건 돌아가게 만드는 게 바로 회사라는 조직니까요. (회사 일에 만족하신다면 철저하게 업무에 집중하시어 임원까지 승진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조금 더 가볍게 회사 생활에 임해보는 것 어떨까요? 여러분의 인생은 온전히 여러분의 것이니까요. 본인만의 뒷배 하나 만들어 더욱 더 부담없이 회사 생활에 임해보는 겁니다. 그 뒷배를 발견하기 위해 저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딱 그전까지만 회사에 충성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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