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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Aug 05. 2024

아빠를 기억해 주는 딸아이

그렇게 2주 이상 야근을 밥 먹듯이 하게 되면서 아이와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었습니다. 곤히 자고 있는 아이 옆에서 조용히 출근을 하고 밤 9시가 넘어서야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니 아이와 대면할 시간 자체가 없어졌죠. 가끔씩 아이가 깨어있는 날도 있긴 했지만 잠들기 전 잠깐 놀아주는 정도였으니 아쉽기는 저나 아이나 매 한 가지였습니다. 휴직 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이 옆에 아빠 대신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날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하는 공동육아가 아닌 엄마와 조부모가 함께하는 공동육아 형태로 조금씩 변모해 갔어요.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들에게 '조부모'의 존재는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혹시나 손주를 돌봐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손주를 돌봐줄 수 있는 조부모가 옆에 있다면 관우, 장비만큼의 엄청난 천군만마를 얻게 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안심하고 일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굉장한 카드를 쥐고 있는 거예요.)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맞벌이하는 부모들이 세상에 그렇게 많다는데 현실은 좀 다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만 해도 당연히 맞벌이하는 부모가 많겠거니 싶었는데 또래 중에 맞벌이를 하는 집은 저희를 포함해 딱 두 부부뿐이더라고요. (세상에나.)



어린이집이 오후 세시반에 끝나 다른 부모들은 자기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는데 우리 아이만 혼자 어린이집에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정말 미안하지 않을까요? 그러해서 일단은 정말 죄송하지만 한시적으로 조부모님께 손주를 부탁드리면서 부부 모두 복직을 하게 됐습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육아시간'과 같은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고 잔인합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오후 4시에 퇴근할만한 배짱도 아직은 부족한 저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저 스스로 아이와 멀어지기를 다시 자처했습니다.



이런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출근길 차 안에서 아내로부터 의외의 말을 전해 듣게 됩니다. "내가 집에 가면 아이가 아빠를 그렇게 찾는다?" "응? 나를 찾는다고? 기분 좋은데?" 당분간 회사 업무에 집중하겠다고 아이를 배신한 저인데 그걸 모르는 아이가 아빠를 그렇게 찾는다는 소리에 기분이 좋은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육아휴직 기간 1년이 넘는 시간을 하루 종일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부대끼며 자란 아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회사로 출근한다며 아침에 사라졌다가 오후 늦게 또는 밤늦게 나타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이상했겠죠. 특히나 주중에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아빠의 모습은 더 이상했을 거고요.



그럼에도 고맙게도 아직은 아이는 저를 기억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아이를 위해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직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몸을 갈아 넣는 회사 생활로 얻게 되는 몇 푼 안 되는 월급으로 가끔 뽀로로 음료수를 사준다거나 금요일 저녁부터 함께하는 시간 정도가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아이를 위해 그리고 저를 위해 금요일 오후만큼은 일이 쌓이건 말건 오후 6시 땡퇴근을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손에 튀김 냄새가 짙게밴 치킨 하나를 들고 말이죠. 현관문을 활짝 여는 순간 들리는 아이의 "아빠, 아빠"라는 음성에 한 주간의 업무 피로도도 그 순간만큼은 사라지는 듯합니다.



'돈이 인생의 전부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충분히 공감하고요 저도 동의합니다. 반대 의견을 개진하려는 것은 아니고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돈과 가족이 인생의 전부다."라고 말입니다.



모든 상황을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이 상황을 이해해 주는 딸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정말 고맙습니다. 아이가 조금 더 괜찮은 조건과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딸아이가 알 수 있었으면 합니다. (몰라도 상관은 없지만요.)



훌륭한 아빠도 되고 싶고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 동시에 해내기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를 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부부들에게 힘내라 말씀드리고 싶고 앞서가신 육아선배님들에게는 존경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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