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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Aug 07. 2024

공무원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최근에 동사무소나 시청 방문해 본 적 있으실까요? 요즘에는 '정부 24'라는 홈페이지에서 기본적인 서류 등은 온라인을 통해 발급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사무소 또는 시청 등을 내방하는 민원인은 여전히 적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인터넷 사용에 능숙한 젊은 세대의 방문율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고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내방은 꾸준한 편입니다.



관공서 방문했을 때 그분들의 표정 보신 적 있으시죠. 조금 딱딱하기도 해 보이기도 하고 무서워 보이기도 하고요. 웃으면서 민원인을 맞이하는 공무원 요즘에는 찾기 쉽지 않습니다. 일전에 제가 '출입국기록증명서' 뗄 일이 있어 동네 동사무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무표정으로 앉아있는 직원분을 보니 공무원인 제가 봐도 '뭐 화나는 일 있었나?'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럼 공무원들은 대체 왜 그런 자세로 업무에 임하는 걸까요? 매번 웃으면서 업무 보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공무원은 민원인과 어떻게든 만날 수밖에 없는 업무 구조이다 보니 세상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에 있더라고요.) 수고한다고 말씀 건네주시는 분도 계시고 반대로 말 끝의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지는 민원인도 있고요. 아주 가끔 아직도 '내 세금으로 먹고사는 주제에'와 같은 잡소리를 시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보다 제가 세금은 더 많이 낼 수도 있는 경우의 수도 있는데 말이죠.



저도 강성이나 악성 민원인과 만날 때 언제나 심장이 쿵쾅쿵쾅 뜁니다. 몇 차례 경험이 있었어도 적응이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심지어 '도망치고 싶다.'라는 생각이 매번 듭니다. 뭐가 됐건 공무원들은 이렇게 자기 나름의 사례(?)가 있기 때문에 방어 기제를 띄고 업무에 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속칭 진상 민원인 한 번씩 만나면서 점점 더 두터운 벽을 만드는 거죠. 그렇지 않은 민원인이 세상에 훨씬 많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만 본인이 그런 일을 겪는다고 가정해 본다면 계속 웃으면서 업무 처리 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공무원도 사람이니까요.



'소극 행정'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적극적인 자세로 업무에 임하지 않는 행정'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공무원은 왜 '소극 행정'을 하게 될까요? 안 잘리고 업무 안 해도 월급 따박따박 나오니까 그럴까요? 글쎄요. 저는 조금 다른 입장입니다. 공무원 전부 다 그런 건 절대 아니거든요. 요즘 공무원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울상입니다. 퇴직자도 많고 휴직자도 적지 않아 업무를 감당해 낼 인력 자체가 없어 보입니다. 그 말인즉슨 남은 인원이 기존의 업무량을 소화해 내야 한다는 소리겠죠. 2명 분의 업무량을 1명이 쳐내야 하는 상황인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아마 3명분 업무 하시는 분도 계실 거예요. (사기업은 더 한가요?)



이런 지자체 진짜 많을 겁니다. 말이 안 되는 업무량에 지쳐서 또는 악성 민원에 치가 떨려 나가 버리는 공무원들 요즘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심지어 연차 좀 되는 7급 공무원도 그만두는 마당입니다.) 공무원이 뭐 평생 직업이라고 말하는 시대도 아니니까요. (공무원이 '국민의 공복'일순 있지만 평생 공복으로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은 업무를 꼼꼼하게 챙기기까지 해야 합니다. 삐끗하면 민원의 불씨가 될 수 있고 자신의 커리어에 흠이 날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적극 행정'이 과연 가능할까요?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없으니 가능할 수도 있겠네요.)



근데 저는 솔직히 못하겠습니다. 업무도 과중하고 가족도 챙겨야 하고 할 거 투성이니까요. 둘 중에 하나 선택하라고 하면 저는 '가족‘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적극 행정'하다가 재수 없으면 소송까지 걸리거든요. 그러느니 할 수 있는 적정 선의 기준에서 업무를 이어나가는 겁니다.(놀고먹는다는 말 절대 아닙니다.)



공무원도 사람입니다. 미친 업무량에 이놈 새끼 저놈 새끼 소리 들으면서 웃으면서 일할 공무원은 세상에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들도 감정이 있는 인간이니까요. 방어기제는 본능적인 겁니다. 나에게 해가 되는 느낌이 오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듭니다. 그런 소리 들으면 누구도 적극적으로 안 합니다. 아니 못해요.



'국민의 공복'이라고 불리는 공무원. 세계에서 행정 처리가 가장 빠른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하죠? 대단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상 당연한 게 다른 나라 가면 전혀 다른 업무 처리 속도에 답답해 미칠 지경이라고 합니다. 아마 지금과 같은 상태가 유지된다면 아마 공무원은 더 소극적인 자세로 업무에 임하게 될 겁니다. 혹시 모를 민원의 불씨에 대비해 더 신중하고 확실한 안내와 답변을 해야 하니까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고, 상대방을 배려해 준 만큼 본인이 배려받게 돼있습니다. 그게 저는 인생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도리라고 봅니다. 공무원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내외부적으로 충분한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 이 부분이 해결될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한 시간이 필요한 건 사실이니까요. 과연 미래의 젊은 친구들은 공직 사회로 다시 돌아올까요?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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