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이후 달라진 점 하나가 있다면 바로 사내 홈페이지에 '블라인드'라는 게시판이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말 그대로 익명으로 게시글을 올릴 수 있는 대나무숲이 하나 생긴 거죠. 변화를 반기지 않는 공무원 조직에 이런 게시판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습니다. 대단한 거죠. 요즘 미디어에서 언급하는 공무원의 현실을 봤다는 이야기이고 어느 정도는 받아들인 사례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언제나 '변화와 혁신'을 외치는 공무원 조직이지만 젊은 공무원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그놈의 '변화와 혁신'은 없었던 찰나에 괜찮은 소통 창구가 하나 생겼구나 싶었습니다. 이따금씩 게시판에 접속해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나 혼자 만이 생각이 아니었구나' 싶을 때도 있었고 공감 가는 이야기도 많았으며 결국 사람 사는 조직 내에서 공무원들 생각도 역시 비슷하구나 느꼈습니다.
그럼 새로이 생긴 '블라인드' 게시판에는 과연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었을까요? 아무래도 익명을 보장하는 게시판이다 보니 개선을 요구하는 사항들이 많았습니다. 업무에 대한 비효율성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고 윗사람이면 모범을 보여라, 왜 허구한 날 비상근무 소집하냐 등등의 진솔한 내용들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익명 게시판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났죠.
상사들도 예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비상근무도 최대한 배려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솔직히 아직 복직한 지 한 달밖에 안 돼서 제 업무 파악하기에 급급해 뭐가 많이 바뀐 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네요.) 더불어 '블라인드' 게시판이라는 것이 결속된 단체가 아닌 개인의 외침이다 보니 한계는 분명히 있다 손치더라고 그래도 조금은 변화된 느낌입니다.
이런 변화의 시작을 저는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쉬쉬하고 있는 것보다 드러내야 그때부터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으니까요. 뭐든 말을 해야 압니다. 게시글에 올라온 글을 보면서 말 그대로 업무 시 본인이 조금 더 책임감 있게 일할 것이고, 뜨끔한 늙공들에게는 어떤 울림을 전달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 또한 업무에 대한 책임감도 생기는 듯합니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라는 말이 있죠. 물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물질입니다. 이런 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돌 위로 지속적으로 떨어진다면 언젠가 그 단단한 돌도 구멍이 나게 마련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정안전부에서 이탈하는 공무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새로운 지침을 잇달아 내놓고 있기도 하니니까요. '속 빈 강정'과 같은 대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대책에 한계가 온다면 결국 숨겨둔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으리라고 봅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더욱더 자발적인 체계가 마련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매스컴에 나와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행정 대신 선제적으로 직원을 배려하는 회사 조직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게 가장 어렵다고들 하죠. 직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일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이 훨씬 달라질 겁니다. 마음을 알아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동일 거예요. 물론 그 조직도 엄청난 발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