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기대감과 동시에 밀려오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시작에 있어 함께합니다. 양념반 후라이드반 치킨처럼 둘 다 맛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은 게 또 현실이기도 하죠. 복직 후 설렘과 두려움 두 가지 감정의 온도를 가지고 다시 회사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오랜만에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를 앞에 앉아 머릿속으로 정리되지도 않은 문서들을 타이핑하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복직한 첫날 2-3장 남짓한 업무 인수인계서에 빼곡히 적혀있는 '과업과 숙제'들을 비롯해 모레는 민원인이 방문할 예정이라는 말 또한 전달받기도 했습니다.(오자마자 방문 민원이라니.) 민원 요지가 담긴 몇 장의 종이를 살펴보니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해 보였습니다. 오죽했으면 구청까지 찾아오겠습니까. (당일 민원인과 만나 잘 처리했다 싶었는데, 그게 또 아니더라고요. 곧 이야기로 풀어내보겠습니다.)
육아휴직 기간 중에 먼저 복직을 하게 된 단지 내 이웃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신이 없긴 한데 몸이 기억을 하긴 하더라고요." 짧은 한 마디에 위로가 되기도 하고 '과연 그럴까?'라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결국엔 해봐야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복직을 했습니다. 어땠을까요? 결론은 '사람마다 다르다.'입니다.
짜장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겠는데 맛은 전혀 모르겠는 느낌이랄까요? 업무의 흐름은 대강은 그려지는데 새로운 업무이다 보니 세부적인 사항에서는 버퍼링이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슬아슬 하긴 하는데 삐끗하면 미끄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복병 하나가 더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쉴 새 없이 걸려오는 ‘내선 전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전화를 하거나 받는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습니다. 업무는 당연하고 일상생활에서 조차도요. 지인들과도 웬만하면 문자 등의 텍스트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는 편입니다. 전화를 걸고 받는 게 저는 왠지 마음이 편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회사는 제 개인 기호를 떠나서 부서 간 업무로 소통을 하거나 민원 응대를 위해 전화는 꼭 필요한 사항이니까요. 시키는 대로 해야죠.
제가 복직한 것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는 각지에서 물밀 듯이 들어왔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맡게 된 업무는 또 그렇게 민원인들 전화가 끊이지 않는 자리였더라고요. 제가 매뉴얼을 봐도 잘 이해가 안 가는데 민원인들은 오죽할까요? 충분히 이해됩니다. 전화기를 붙잡고 매뉴얼을 넘기면서 민원인의 궁금 사항을 풀어줍니다. 저도 모르는 건 상급기관에 확인 후 다시 전화로 안내해 줍니다.
업무에 대해 집중해서 공부만 해도 모자랄 판에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민원 전화 응대를 마치면 기력이 소진되는 느낌이 듭니다. 호흡을 한번 깊게 쉬고 다시 본 업무로 돌아옵니다. 그럼 이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나 뭐 하고 있었지? 뭐 하고 있었더라?' 하는 거죠. 그놈의 건망증 다시 시작되려나 봅니다.
물건이나 할 일을 자주 잊고사는 저였는데 군대 다녀오고 나서는 싹 고쳐졌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선임에게 혼나지 않으려면 물품 보관 잘하고 할 일은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게 군대 생활 중 하나였으니까요. 근데 그놈의 건망증이 찾아왔습니다. 패닉까지는 아닌데 그놈의 건망증 때문에 일이 지연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고요 훗날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었던 추억 거리가 하나로 남아있겠지 싶습니다.
'건망증'은 대체 왜 생기는 걸까요? 환경이 불안하거나 마음이 초조할 때 실수도 빈번하게 일어나 건망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딱 제 상황인 거죠. 그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군대에서도 선임에게 덜 혼나려고 일 미리미리 하고 선임이 말한 거 기록해서 잘 챙기니 이후로 별말은 안 하더라고요. 비슷할 것 같습니다. 정말 어렵겠지만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장악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그놈의 건망증 잘하면 또다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장악하고 싶지 않아서가 문제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