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의 어느 회식 날이었습니다. 팀장은 잠시 볼일이 있다며 오후 반차를 사용하게 됐고 일과 후 회식 자리에서 합석하기로 했죠. 병원 간다는 이야기만 잠시 들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일과를 마치고 음식점으로 향하던 중 길에서 팀장을 만나게 됐습니다. "팀장님, 병원 잘 다녀오셨어요?"라고 건넨 한마디에 팀장은 "음. 생각보다 결과가 안 좋네. 미안해서 어쩌지?"라는 말로 답을 전합니다.
사람에게는 본능적인 직감이라는 게 있습니다. 주위 환경, 말의 어조, 높낮이 등을 몸으로 체감하며 희한할 정도로 단번에 분위기가 파악되는 그런 본능적인 감각 말입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감각적이라고 하지만 이날만큼은 제 본능과 직감이 돋보였던 것 같습니다. 찰나의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구나 싶었습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제발 안 미안하게 해 줘'라고 속으로 되뇌며 회식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오랜만에 있었던 회식에 참석했던 지라 가벼운 마음으로 회식길에 나섰는데, 먹구름이 저 멀리 다가오는 느낌이었습니다. 팀장과는 같은 테이블에 배석되었고 고기를 구우면서 저는 다시 한번 한마디 건네게 됩니다. "어디 많이 아프세요?"라는 말에 팀장이 머뭇거리다 답을 하더라고요. "응, 당분간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아." 당분간 부재 상황이라고 명확하게 짚어 말을 건냅니다.
"얼마나 걸리실 것 같아요?"라는 나의 물음에 "8월 말에 들어가서 추석 정도?" 정말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걱정 마시고 치료 잘 받고 오세요."라고 전해드리며 술 한잔에 잠시나마 잡생각을 털어냈습니다. 약 한달 기간의 공백기간. 사람이 아프다는데 사실 무슨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어디가 아픈지 깊게 묻기도 힘드니까요. (직장을 다니는 것도 자기 몸을 건사하기 위해 다니는 수단이니 별 수 없죠.)
사실 아프다는 전제를 제외하고 봤을 때는 팀장이 부재인 상황에서는 '아싸라비야 콜롬비아'를 외칠 수도 있습니다. 결재라인도 하나 접고 지나갈 수 있고요. 막내나 중간 자리에 있는 팀원이라면 저도 그러려니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그렇게 긴장을 했을까요? 제가 팀 내에서 '계주임'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주임은 팀 내 공무원들의 업무를 수합하는 역할을 하는 직원으로 팀장 다음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따로 직위가 있는 건 아닙니다.)
공무원은 보통 사기업과는 다르게 주민에게 빈틈없는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대직자'라는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A라는 직원과 B라는 직원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만약 A가 휴가 등의 사유로 부재하게 됐을 때 B가 A를 업무를 대신해 준다는 의미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대직자라고 해서 부재중인 직원의 업무를 도맡아 적극적으로 해주는 건 아니고 A의 전화를 당겨 받거나 간단한 업무 처리 정도를 지원하는 편입니다.(사기업에는 이런 제도는 없다고 들었네요.)
이제껏 제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팀장이 부재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업무 분장 상 팀장의 대직이 바로 저인 계주임이었거든요. 그럼 조직에서 팀장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부서장과 팀원의 연결고리가 되기도 하고 팀원의 보고서를 지도해주기도 하며 중요도가 높은 계획서의 경우 서열 2위인 부구청장에게까지 찾아가 직접 보고도 하는 역할을 합니다. (정말 다양한 일을 하죠.) 요새는 공무원 조직에서 팀장도 일을 해야 하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6급 계장이 되었다고 놀기만 하는 망고땡 시대의 팀장은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적어도 시청이나 구청에서는 말이죠.
이런 역할을 당분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부담이 많이 됐습니다. 국장님 주관의 주간 업무 회의에도 참석해야 하고 민원이 발생했을 때 커버칠 수 있는 역할도 해야 하니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게 되는 상황이 되더군요. (안 그래도 쫄보인데 말이죠.) 복직을 한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어수선한데 갑자기 팀장의 부재로 대직자 역할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팀장은 본인 여름휴가 계획도 전면 취소를 했고요.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팀장 없이 팀원만 남은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팀장이 사라진 거죠. 팀장이 없는 첫날에는 국장 주관으로 부서장과 팀장이 한데 모여 지난주의 업무추진 실적과 이번 주의 업무계획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했고 둘째 날부터는 내년도 부서 주요 업무계획 수립을 위한 일정에 돌입했습니다. 팀 간에 협의해야 할 사항도 많고 예산은 얼마를 책정할지 고민도 많이 해야 하는 시기여서 빠른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 한주의 마지막 날에는 부구청장 보고까지 들어가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부구청장 목소리가 호랑이 같이 크더라고요.)
본 업무도 해야 하고 내년도 업무 추진을 위한 팀 전체의 개략적인 그림도 그려나가야 하다 보니 정신없는 요즘입니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면 한주라는 시간이 지나갔다는 겁니다. 일을 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네요. 팀원이 아닌 팀장의 위치에서 바라보니 조금 달리 보이기는 합니다. 제출해야 하는 업무 계획은 제출을 안 하는 팀원을 보면서 눈치를 보기도 하고 재촉하지 않으면서 말을 하는 방법은 없는지 궁리도 해보고요.
우리 팀장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요즘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공무원 조직에서도 팀장이 팀원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아래에서는 까딱하면 관둔다고 말해버리는 직원이 발생해 업무 공백이 초래될 수도 있고 위에서는 내려오는 무언의 압박이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중간이라는 게 참 애매하다고들 말하는 것 같네요.
'팀장이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이번 '팀장 체험 삶의 현장'은 앞으로 3주 간 지속될 예정입니다. 추석이 다가오는 그날을 고대하며 버텨주는 우리 팀원들에게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더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팀장의 원만한 회복 또한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