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 근무와 다르게 구청 근무 시 비교되는 점이 있다면 바로 '당직 제도'라는 게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 사기업과 다르게 공공기관의 경우 주민의 안전과 민원사항을 처리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에 일과시간이 끝나거나 주말 같은 경우에 최소한의 인력으로 응대를 하게 되는 당직 근무라는 게 존재하게 되죠. (지자체 공무원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근무 제도입니다.)
당직은 크게 숙직과 일직으로 나누어집니다. 숙직은 18시 이후 밤샘 근무를 하며 민원 응대를 하는 밤샘 근무이고 일직의 경우 주말 오전부터 오후까지 업무 공백으로 인한 각종 문의 및 민원사항에 대비하기 위해 운영 중인 제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말에 누가 관공서에 전화를 걸어?'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전화가 밀려옵니다. 여름같이 찌는 더위에는 불쾌지수가 높기 때문에 민원의 강도도 훨씬 강하고요. 계절성에 따라 민원의 강도가 다르다고나 할까요?
제가 소속된 지자체의 경우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직원은 순번을 매겨 보안 당번을 정하고 21시까지 근무를 서게 합니다. 그리고 21시 이후에는 보안업체를 통해 관리가 되기 때문에 결국 밤샘하는 근무하는 일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업무면에서나 개인 시간 관리 등에 있어 동사무소가 더 편한 환경이고 선호하는 편입니다.(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요.)
한편, 육아휴직 전까지만 해도 숙직은 주로 남자 공무원의 전담 업무였습니다. 2-3달에 한번 꼴로 매번 숙직을 서게 되니 피로도는 둘째치고 '너무 잦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히 하고 싶은 생각도 당연히 안 들고요. 숙직에 대한 대가가 대체휴가 1일과 6만 원 정도의 현금이 전부여서요. (이 돈 안 받고 안 하고 싶게 마련입니다.) 당시에 여자 공무원의 경우는 숙직이 아닌 일직만 서는 것으로 내부 방침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근데 숙직하고 싶은 여직원들도 혹시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복직 이후 변화가 생겼습니다. 남녀 구분 없이 일직과 숙직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던 거죠. 공무원 조직의 경우 성비율이 아무래도 여성이 높은 편인데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의 남자들만 계속 숙직을 서니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 상황을 반영해 준 사례 같아 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내 상황에 맞춰 저 또한 난생처음 토요일 주말에 일직을 서게 됐습니다. 당직 보좌관을 비롯한 6명의 인원 중에 저를 제외한 모든 공무원분들이 여성분이었고요. (확실히 여성 공무원이 많긴 합니다.) 맞은편 팀 주임이 토요일 일직 같은 경우에 민원도 많고 처리해야 할 사항도 많다고 해서 좀 부담감을 안고 일직을 서게 됐습니다.
주말에는 아무래도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사람이 없으니 모든 민원 전화는 당직실로 모여들게 됩니다. 복불복인데 이 날은 조용하게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요, 소음 민원으로 일직 업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공사장 주변으로 천둥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서 못 살겠음' 현장에 나가 소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계도를 합니다.
이 후로도 '핸드폰 대리점에서 음악을 너무 크게 틀어놔서 잠을 못 자겠음' 이런 소음 민원도 추가로 발생해 현장방문을 몇 차례 하게 됐습니다. 계도하러 현장을 방문했는데 되레 업체 사장이 민원을 거는 상황은 참 난감하더라고요. (이제야 말하지만 그건 소음 맞습니다. 사장님.) 역시나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보니 민원 사항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듯합니다.
당직을 서는 공무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굉장히 제한돼 있습니다. '쓰레기 치워주세요'와 같이 즉시 처리가 가능한 업무는 방문 후 해결하면 그만이지만 소음 민원이나 복지 상담 등을 원하는 업무는 해결하기 참 어렵습니다.(사실 못합니다.) 각기 다른 부서에서 모여 최소한으로 행정을 이어나가는 상황이니 양해를 구하고 민원사항을 담당자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편입니다.
일직이나 당직을 서면 금기해야 하는 문장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생각보다 민원이 적게 들어오네요?'라는 말인데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하는데 정말 웃기게도 이런 말 뱉으면 민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오곤 합니다. 이런 사실을 깜빡 잊고 있던 제가 민원이 잦아들 즈음 말 한번 뱉었다가 뭇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일직을 서는 공간은 주말에 벌어지는 민원을 처리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타 부서 사람들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말 수가 적은 직원분도 계시고 반대로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나가는 분들도 계시죠. 이 날은 분위기 메이커 직원 한분이 계셔서 즐겁게 근무했습니다. (토요일 근무였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죠.)
저출산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분께서는 제게 아이 한 명 더 낳으라는 농담도 건네시고 최근 수면 위로 급부상 중인 공무원 의원면직 사안, 결혼을 앞둔 직원분의 이야기 등 사람 사는 이야기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결국 회사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그분들의 모습도 그려보고 사람의 생각이 비슷하다는 점도 되짚어보게 됩니다.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릴 때는 긴장이 되고 바쁘게 흘러갔지만 제 인생 첫 일직은 적정한 민원과 적당한 긴장으로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회사 생활 내 평생 반복하게 될 일직이지만 시작이 좋아 다음 차례에는 경험을 가지고 더 숙련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나저나 당직비 6만 원은 언제 들어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