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 복직을 한지도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었습니다. 더위는 가시고 선선한 가을이 다가온다는 '처서'까지 지났지만 푹푹 찌는 2024년의 여름 날씨처럼 답답한 제 마음에는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기색이 보이지 않고 있는 요즘입니다. 조용할만하면 일이 터지고 봉합하고를 반복하며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 업무 덕분에요. 이런 줄은 진작 알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부담되고 있는 요즘입니다.(모든 직장인이 그렇듯 다들 비슷하겠지 싶습니다.)
구청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조금 더 무거운 업무를 맡게 되었고 익숙해지고 싶지 않지만 필연적으로 익숙해져야 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업무 시 책상 위에는 정리 안된 페이퍼들이 수두룩하게 펼쳐져 있고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 덕에 일의 우선순위 잡는 게 어렵게 느껴집니다. 일 년 정도 한 바퀴 업무를 해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이지 않을까 예측해 봅니다. 그렇게 업무가 익숙해질 만할 때 다른 곳으로 발령 내버릴 테지만요.
여하튼 회사 덕분에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결론적으로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지난주에는 하루 휴가를 내 오랜만에 하원하는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을 방문했는데요, 별로 반가워하지 않더라고요. 근래에는 할머니가 매번 하원을 해줘서 그런지 이게 그게 더 익숙한가 봅니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속이 타들어 가네요. 밥을 잘 지어놨는데 누가 와서 재를 뿌리는 느낌입니다.
'회사'라는 녀석 덕분에 올여름휴가는 반납한 지 오래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눈치는 주지 않는데 눈치는 저 혼자 봅니다.) 회사에서 잠시나마 미소 짓는 시간은 이곳저곳에서 제출하라는 업무는 옆으로 잠시 미뤄두고 핸드폰 속에 담긴 아이 사진과 영상을 보는 게 전부인 듯하네요. 아. 밥 먹는 시간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복직 첫 달에는 야근의 연속이었고 둘째 달은 일은 해야 하는데 직장에는 도저히 못 있겠어서 적당히 하다가 집으로 오기를 반복했습니다. 못 있겠더라고요. 요즘 회사에서 일하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부서 저 부서에서 내라는 거 다 제출하고 민원도 듣기 싫은 소리 들으면서 다 했다 치자. 근데 이게 내 인생에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까?'
육아휴직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복직 이후 생각이 거의 180도에 가까울 정도로 변화됐습니다. 너무 오래 쉬어서 그런 걸까요?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면 숙련도는 높아질 것 같습니다. 회사 관련 업무에서 만큼은요. 사람 상대하는 민원은 어떨까요? 민원인에게 듣기 싫은 소리 듣고 가끔 욕도 들으면서 꾸역꾸역 해나갔다 쳐보겠습니다. 당시에는 기분이 불쾌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마음은 더 단단해질 수도 있겠지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드는 생각에서는 이게 전부입니다.
단단한 울타리 안에서 있어서 제가 세상을 잘 모르는 걸까요? 하루에도 수백 번씩 되뇌는 질문입니다. 자꾸 '이게 맞나?' 싶은 거죠 공무원의 정년은 만 60세입니다. 정년까지 이렇게 살아간다고 하면 적은 보수이지만 현금흐름도 안정적이고 어쩌면 목표하는 작은 부자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로 가는 길에 있어 꾸준한 현금흐름만큼 중요한 것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정년을 채우고 나왔을 때 과연 그다음 단계는 뭘까요? 하루 이틀이야 놀지 맨날 놀기만 하면 큰 의미는 없겠지 싶습니다.
공무원 조직은 보수적인 성향의 집단이기에 유지와 안정을 최우선으로 두고 그 뒤에 변화를 시도하는 형태로 업무를 진행합니다. 이런 성향의 조직 내 사람 또한 비슷한 사고에 젖어들게 됩니다. (저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비슷한 성향을 갖추어 가다가 사고의 한계에 부딪히는 사람들은 의원면직이나 휴직을 통해 제 살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주에 한두 번은 의원면직 또는 휴직하는 직원들의 공문 보게 됩니다.)
조직에 충성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저도 더 이상 조직에 충성은 못하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하고요, 그 이상의 과한 무언가를 요구한다면 언제든 의견을 피력할 겁니다. 어차피 저희는 언제나 대체가능한 인력이니까요. 누구 한 명이 없어도 어떻게든 돌아가는 곳이 공무원 사회입니다. (결정적으로 제 회사가 아닙니다.)
조직에 충성하지 않는다 요즘 세대가 갖고 있는 마인드이기도 한데요, 이를 진정으로 구현해 내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저는 무조건 자기만이 갖고 있는 필살기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겁니다. 탑클라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무언가는 무조건 갖추는 거죠. 회사를 다니면서 틈틈이 내공을 쌓아보는 겁니다.
재능을 만들고 다듬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연공서열을 떠나 더욱 당당하게 업무에 임할 수 있게 되리라 봅니다. 부업으로 시작해서 본업을 넘어서는 순간부터는 더 이상 조직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겁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무언가의 자신감이 우리를 감쌀 거예요. 제 경우 부부 공무원으로 결혼해 박봉의 월급을 모아 자산을 10억 넘게 모아낸 경험이 있습니다. 솔직히 자신감 생겼습니다.
일을 관둬야 하는 수준까지 가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럼에도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일구어낸 자산인지라 자신감이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자신감이 붙으면 다른 방법을 이것저것 시도해 보게 됩니다. 그중에 맞는 방법이 분명히 하나는 나올 겁니다. 다 필요 없고 딱 한 개면 됩니다. 회사가 좋고 조직이 좋다면 충성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저처럼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은 생각의 한계에 갇히는 대신 행동으로 하나씩 한계를 이겨낼 수 있는 빌드업 조금씩 시도해보셨으면 합니다.
"더 이상 조직에 충성하지 마세요. 본인에게 양보하세요." 저는 조직에 더 이상 충성하지 않기 위해 '글쓰기'를 제 도구로 사용해보려고 합니다. 출간에 대한 희망도 있고 강의에 대한 열정도 있습니다. 제가 가진 저만의 스토리가 분명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박봉의 공무원이 10억을 만들어간 과정, 부부가 함께 육아휴직을 한 스토리 등이 인생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