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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Aug 23. 2024

엠지를 싫어하는 엠지

공무원 조직에서는 새로운 부서에 오게 되면 의례 하는 행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전출입 직원 환영회 및 송별회'입니다. 다른 말로 회식이라고 하죠. 전출 한 직원에게는 앞날의 축복을 새로운 부서에 전입 오게 된 직원에게는 부서 내에서의 안녕을 기원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복직을 한지 몇 주 되지 않아 이런 행사가 열리면서 오랜만에 소주 한잔 기울일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물론 아내에게는 양해를 구했습니다.)



부서 내 여러 직원들이 모여있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따로 얘기 나눌 시간이 마땅치 않은 턱에 간간이 마련되는 회식 자리는 아저씨인 저에게 반갑게 다가왔습니다. 팀 내 팀원들 간에 종종 이야기는 나눌 수 있지만 다른 팀원들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자리는 자기 본업무에 치이는 덕에 기회가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코로나 이후 공무원 조직도 회식을 하는 횟수가 굉장히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일년에 한두번 하는 정도로 간소화 됐죠. 흔하게 다녔던 야유회도 이제는 거의 없는 듯 하고요. 직원들의 개인적인 시간을 적극 배려하는 분위기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개인사를 존중하는 근래에 분위기에 시의적절한 처사라 봅니다.



어찌 됐건 이 날의 송별회 그리고 환영회 회식의 장소는 '고깃집'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외식을 해본지가 참 오래됐었던 탓에 사내 회식인데도 불구하고 기분이 꽤 좋았습니다. 숯불에 구워먹는 고기를 먹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었기도 하고요. 회식할 때 어디에 앉아야 편하고 재밌게 먹을지 항상 고민이 되기 마련인데, 이 날은 저는 저희 팀장님 그리고 타 부서 팀원 두 명과 함께 자리를 앉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테이블 4명 중 저를 포함해 3명이 술을 꽤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괜찮은 자리에 앉았다 싶었습니다.



그덕에 고기를 굽는 자리에서 오랜만에 집게를 집어 들었습니다. 고기를 잘 굽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저인데도 이 날 만큼은 오랜만의 외식(?) 덕분인지 생각보다 돼지고기의 굽기도 알맞아서 테이블에 앉은 이들에게 아쉬운 소리는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기 잘 굽네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죠.



테이블에 앉은 한 직원은 태어난 지 갓 100일 된 아이의 아빠였고 다른 한 직원은 30대 초반의 미혼인 남직원이었습니다. (두 직원 모두 술을 좋아하는 이들이었고요.) 한잔 두 잔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무실에서 나누는 딱딱한 업무 이야기 말고 그냥 편하게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요.



사무실에서 느껴지는 공기와 꽤나 다른 공기와 분위기가 전달됐습니다. 오랜만에 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요. 한 병이 넘는 술을 목으로 술술 넘기니 더욱더 솔직히 이야기가 가감 없이 나왔습니다.  여러 이야기 중 30대 초반이었던 남직원이 했던 말이 문득 기억에 정말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엠지가 싫어요." 엠지를 싫어하는 엠지라. 난생처음 보는 캐릭터였습니다.



엠지 세대. 1980~2000년대 초에 태어난 이들을 말하는 용어로 개인에 삶과 자기 결정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 정도로 정의 내려봅니다.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데 스스럼이 없고 사회에 굴복하지 않는 성향을 띤 젊은 세대로 보이기도 하고요.(젊은층은 다들 그렇긴 하지만요.) 그나저나 엠지 세대에 있는 청년이 엠지가 싫다는 말을 한다는 게 좀 신기했습니다.



그 친구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엠지 세대는 자기 할 일은 정작 하지도 않으면서 자기 것만 챙기려고 하는 엠지가 싫다고 말입니다. 번외로 해당 직원의 성격은 파티션 너머로 들려오는 민원인과의 전화 통화로 익히 알 수 있었습니다. 악성 민원인과는 싸워서 이겨낼 만한 강단이 엿보이는 직원으로 불만이 있으면 민원 접수해라 라는 말을 할 정도로 당찬 직원이었으니까요.



멋져 보였습니다. 저는 악성 민원 하나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 중 하나인데 말입니다. 어쨌든 엠지인 친구는 엠지가 싫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전했습니다. 엠지 세대에 꾸역꾸역 걸쳐있는 저도 이 세대만이 가지고 있는 거침없는 추진력에 대해서는 공감과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행동할 수 있지? 그런 말을 어떻게 해? 파격적인데?' 옛 사고에 사로잡힌 낀세대인 저로서는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요.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자신의 몫은 분명히 해내야 하는 것 같습니다.(이 친구는 자기몫의 2배를 해내는 친구 같아 보입니다.) 징징대기만 하면 누가 알아주냐고요. 이 친구의 가벼운 말 한마디가 제게 울림을 줬습니다. 왜 배움에는 위아래가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제 몫은 정작하지 않고 요구만 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죠. 쓰러지고 포기했다가 다시 시도해서 달성하게되면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겪어야하는 회사 생활이라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주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꿈을 꾸고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지금의 고통이나 아쉬움 등은 잠시 미루어 둘 수 있으니까요.



항상 그래왔습니다. 3년여간의 공무원 수험준비 기간 비롯해 취업하고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사건사고들을 처리하고 돌아보면 추억으로 남아있으니까요. 사람은 꿈을 먹고사는 존재라고들 하죠. 제 꿈을 달성하는 날을 위해 지금 제가 받는 여러 고민과 생각들이 훗날 웃으면서 돌아볼 수 있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생은 한번뿐이니까요. 최대한 즐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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