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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아나 Mar 02. 2019

나는 그녀를 끔찍하게도 닮았다

속이 터질 만큼 답답해서


봐. 나 지금 키보드 자판을 누르는 게 아니고 때리고 있다? 살포시 누르거나 경쾌하게 누르는 것과는 조금 달라. 타다다닥보다는 쾅쾅쾅처럼 키보드 자판을 때리는 날이 종종 있잖아. 없어?

나이 먹고 추하게 매달린 게임에서 졌을 때, 열심히 작업한 세이브 파일이 날아갔을 때, 별로 화가 나진 않았는데 그냥 갑자기 치고 싶을 때, 오늘은 그냥 치고 싶었고 그래서 치고 있어.


얼마 전 게장백반을 먹었어. 혼자 살면서 게장이란 걸 먹기가 영 쉽지가 않잖아. 비싸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오랜만에 밥 같은 밥을 먹었다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앉았을 때 창가 너머로 비치는 모습에선 엄마가 보이는 것 같았어.


어릴 때부터 나와 엄마는 좀처럼 닮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었어. 사실 안 닮았거든. 가끔씩 눈이나 눈썹이 닮았다는 소리에 어색해서 감사하다는 소리를 했지만 속으론 하나도 안 닮았다고 생각했지. 사실 눈이나 눈썹은 정말 억지로 갖다 붙인 거잖아. 정말 아무리 봐도 닮은 구석이 없을 때나 고를만한 부위잖아. 그도 그럴 것이 사람 눈이나 눈썹이란 게 다들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왜냐면 정말 안 닮았으니까. 그때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랑 닮는 게 싫었어. 


확실하게 엄마랑 달라졌다고 생각한 건 중학교쯤인 것 같아. 기본적으로 나도 엄마도 사람을 믿지 못하는 건 똑같았지만 그 무렵부터 나는 한 명 두 명 믿고 싶은 사람이 생겼던 것 같으니까.

사람 너무 믿지 말라는 그 말에 늘 짜증 냈지. 아직 무슨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닌데 왜 그래야 하냐고.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었어. 엄마는 나랑 다르게 일평생 사람한테 속아왔으니까. 


사람을 못 믿어서 사람을 곁에 못 두는 엄마는 사는 게 참 답답해서 나까지 숨이 막혔어. 아무도 못 믿으니 친구도 없고 다가오는 사람도 밀어냈으니까. 그렇게 사람을 밀어내던 엄마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투병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어. 선고받은 세 달 중 두 달이 지나서야 간신히 한 명에게 알렸고 그 유일한 친구가 왔다 갔지만 그 친구도 사실 별로 믿지 않았지. 


내가 쌓아온 신뢰의 증거인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을 때가 되어서야 엄마는 날 인정했어. 대충 10년쯤 걸렸을 거야. 네가 그래도 사람은 잘 사귀었다. 그렇게 엄마가 죽고 절하는 방법도 모르는 친구들이 3일간 곁을 지켜줬을 때 조금은 안심했지.

다행이야 나는 엄마랑 다르구나.


기일을 몸에 새긴 지 4년쯤 지난 버스 안에서 나는 엄마랑 똑같은 모습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화가 났어. 좀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개빡쳤지.

그녀가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끝까지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어. 결국 사람 한 명 못 믿고 제대로 된 친구 한 명 없이 항상 쓸쓸하게 앉아서 TV를 보던 그 모습이 나는 진짜 싫었거든. 기분 좋게 한 잔 마시고도 내가 갈 곳이 어딨냐며 이불속으로 파고들던 그 모습이 나는 진짜 싫었거든. 바라보는 나까지 쓸쓸해지는 것 같아서. 


사실 나는 그렇게 되는 게 참 싫어서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 나오라면 나가고 짖으라면 짖고 가끔은 반항도 하는데.. 대부분은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야. 그런데도 마음이란 게 내 마음 같지가 않아서 하나둘씩 찢어져가는 것 같아. 이렇게 한 명 두 명 떠나고 나면 결국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그 모습이 될 것 같아서. 


거봐라 내가 뭐랬냐 사람 믿지 말랬지 하는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결국 하나둘씩 떠나고 나면 내가 그 길을 그대로 걷게 될 것 같아서 오늘은 화가 났어. 화라도 내면 그렇게 되진 않을 것 같아서.

죽은 엄마를 닮아가는 느낌이라 화가 났다는 미친놈이 또 있을까. 그래도 때리지 않으면 이거라도 때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이렇게 키보드를 때렸어.


이 소리에 고독이 달아나기를 빌면서 때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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