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방백

나는 새 것이 두려워

신발과 인간관계

by 주아나

얼마 전 자고 있는 사이 많은 눈이 내렸다. 밤사이 녹아내린 눈을 밟다가 오른발 뒤꿈치에 불쾌한 감각이 스며들었다. 신발 밑창이 닳아 양말이 젖었다. 닳아 없어진 밑창 너머로 낡은 깔창이 보였다.


"신발 사야겠네."


sneakers-2679804_960_720.jpg

이후 신발을 구경하러 다니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신발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깔창을 조금 더 두꺼운 것으로 바꿔 아직도 그 신발을 신고 있다. 다리가 아픈 탓에 코디나 기분이나 날씨에 맞춰 신발을 신는 일은 불가능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신을 수 있는 신발 자체가 몇 없었다.


그러나 현관을 나설 때마다 그동안 신었던 신발들이 난잡하게 늘어서서 한 번씩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고등학교 때 신었던 신발. 대학교 입학하고 신었던 신발. 휴학하고 신었던 신발. 운동할 때 신었던 신발.

지저분하게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신발들을 보며 지금 신는 내 신발도 결국 그중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 생각하며 일어섰다.


'이젠 신을 수도 없고 쓸모없는 신발들을 왜 버리지도 않고 내버려뒀을까.'


의식하고 모아둔 것도 아닌데 막상 버리려니 왠지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신었던 신발들을 잠시 만지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신으면 왠지 그때처럼 내 발에 착 맞을 것 같았다. 누구나 그렇듯 새 신발을 사면 새것의 냄새와 함께 당분간 내 발에 길들이기 위해 작은 상처 한 두 개쯤은 감수해야 한다.


다리가 아픈 내게 신발을 길들이는 시간은 고통이었다. 어릴 땐 그게 싫어서 새 신을 사면 잘 안 나가려고 했을 정도였다. 이제 그 정도로 큰 상처가 나지도 않고 그 정도로 아프지도 않지만 나는 여전히 새 신발을 사려할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내 발에 맞는 신발을 사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지금의 이 편안한 신발을 정말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새삼스레 깨달았다. 난 어릴 때부터 늘 새로운 것을 두려워했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딱히 새로운 것에 대한 상처는 없었다. 나는 그냥 그동안 익숙해져 온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일이 싫었다.


편하고 익숙한 것을 포기하고 불편하고 낯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인간관계도 똑같았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어리고 어리석다.


중학교 때는 새 학기 때마다 기도했다. 내가 아는 친구와 같은 반이 되기를. 그리고 한 명이라도 아는 친구가 있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익숙하게 그 친구에게 다가가 웃어 보였다. 친한 사람들끼리만 반을 이뤄 3년 내내 함께 지낼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고등학교 때 실현되었다. 두 반 밖에 없는 과에 들어가 대부분의 친구들과 3년을 함께 보냈다. 심지어 담임선생님도 두 번이나 똑같은 분이셨다. 새로운 것이 좋다던가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편안히 느껴지는 그 안정감이 좋았다. 오늘과 다를 바 없는 내일이 온다는 것이 좋았다.


이렇게나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니 당연히 내 인간관계는 좁아터졌다. 손가락 하나당 한 명씩 하고도 서너 개쯤의 손가락이 남는다. 그래서 늘 두렵고 칼 위를 걷는 기분이 들곤 한다. 신발의 밑창이 닳아 양말이 젖어 어쩔 수 없이 새 신을 사듯 사람도 같을까.


people-2943063_960_720.jpg


위태롭던 관계가 제자리를 찾아가면 지금과 같은 순간이 영원하길 기도한다. 잠시의 위기는 그저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그 편이 더 편안하고 좋아서.


이미 닳아 없어진 신발의 밑창을 새 깔창으로 바꿔 잠시 틀어막듯 나는 위태로운 관계를 유지하려 미친 듯이 발버둥 친다. 조금이라도 그 순간을 이어가고 싶어서 의미 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당신에게 나만은 특별한 존재이길 바라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간다. 그것이 대책 없는 어리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외면했다. 당연하게도 그쪽이 내게 더 익숙하고 편하니까.


나는 여전히 새 것이 두렵다. 바꾸진 못하더라도 그저 남들만큼이라도 용기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새것을 잡을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손에 쥔 것을 흘려보낼 수 있을까.


아주 잠시 상상한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무너져내리는 감정이 흘러들어온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감정이 밑창처럼 닳아 없어지는 것도 새 것을 길들이는 것도. 내게는 아직 버거우니까. 억지스러워도 지금을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어. 그 편이 내게는 더 익숙하고 편하니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신발은 정말 조만간 바꿀 예정이다. 다만 늘 신던 브랜드의 것으로. 그 편이 더 내게 익숙하고 편하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죽음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