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도가 바라본 사랑의 의의
나는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도 있었고 그러한 사람과 잘 되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으나 마지막에는 늘 외면해 버렸다. 정확한 이유는 나 자신도 모르겠지만 아마 누군가를 사랑할 때 드는 약해지는 느낌이 싫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스무 살 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프셨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죽음은 아니었다. 오랜 작별인사에도 불구하고 막상 아버지를 떠나보내자 나는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송두리째 바뀐 내 삶과 무섭도록 그대로인 세상 사이에서 삶에 대한 처절한 회의감을 겪었다. 방을 벗어날 수 없는 나날들을 홀로 보내야 했다. 나를 사랑하지만 먼저 가버린 아빠를 원망하면서.
바닥을 찍고 버티니 어찌어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경험은 나를 겁쟁이로 만든 듯했다. 마음이 흔들리는 일에 극도로 예민해졌다. 평정심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리는 순간 내가 겪은 그 어둠으로 다시 곤두박질칠 것만 같았다.
의도적으로 무감각해지기를 몇 년을 반복한 후 나는 원하던 것을 얻어냈다. 정말로 무감각해진 것이다. 나는 사랑을 거부하기로 한 내 선택에 대한 논리적인 추론만 남기고 감정과 같은 것들은 다 잊어버렸다. 그리고 사랑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왜 사람들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까? 사랑은 현재를 비효율적으로 만들며, 미래를 고통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순간의 감정에 끌리는 데로 행동하는 것이 이 모든 단점을 무시할 정도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최근 Alain de Botton(알랭 드 보통)의 'On love(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었다. "I"-confirmation이라는 챕터를 읽던 중 내 질문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Without love, we lose the ability to possess a proper identity; within love, there is a constant confirmation of our selves. It is no wonder that the concept of a God who can see us has been central to many religions; to be seen is to be assured that we exist, and all the better if one is dealing with a God (or partner) who loves us. Surrounded by people who precisely do not remember who we are, people to whom we often relate our stories and yet who will repeatedly forget how many times we have been married, how many children we have, and whether our name is Brad or Bill, Catrina or Catherine (as we forget much the same about them), is it not comforting to be able to find refuge from the dangers of invisibility in the arms of someone who has our identity firmly in mind? p. 100
존재하기 위해 목격자가 필요하다는 말이 강렬하게 와닿았다. 이 말은 단순히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실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지켜봐 주는 사람이 없으면, 나는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끊임없이 나와 관계하고 수많은 상황에서의 나의 행동을 관찰할 때, 나는 비로소 여러 개의 명확한 행동들로부터 추론될 수 있는 어떤 것(object)으로 존재하게 된다.
뉴턴의 고전역학에서 근대의 양자역학으로의 도약에도 같은 아이디어가 밑받침하고 있다. 고전역학에서는 관측자와 상관없이 물체는 존재하고 운동한다고 생각했지만, 양자역학에서는 관측자와의 상호작용이 물체의 존재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관측되기 이전의 물체는 두루뭉술하게 시공간에 흩어져 있는 확률 함수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보가트처럼, 모든 물체는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으로 존재하다가 관측자와 상호작용을 할 때 비로소 가능한 모든 상태 중 하나의 상태로 결정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존재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이 기억해 주는 대단한 인생이 아니더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관찰해 준다면 내 삶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진정으로 존재한 의미 있는 사건이 되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거리는 것처럼 수많은 존재들이 무의미해 보이는 어둠을 수놓는 듯하다.
스무 살 이후 점점 희미해진 내 존재에 미안함을 표하며, 나도 이제 관측을 하고 관측을 당해보겠다는 작은 결심을 한다.
* 글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발행 후 수정하였습니다. 202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