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덴하임

by 정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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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비탈을 따라 나선형으로 완만히 나 있는 산길을 걸었다.

흙길은 갖가지 색의 낙엽들과 주인이 있거나 없는 호두나무, 사과나무, 자두나무, 배나무, 또이름모를 붉은색, 보라색, 그리고 설익은 초록색 열매들로 뒤덮혀 걷는 즐거움을 준다.

산길 초입부터 흙길을 따라, 드문 드문 빨갛게 익은 사과가 가득 열린 사과나무가 눈에 띄었다.

가끔씩 사유지가 아닌 산이나 들에 있는 사과나무를 볼때면 아이가 사과를 따달라고 했고 그때마다 맛나게 다 먹었기 때문에, 아주 아삭하고 달콤하리라고 짐작했다. 특히 이렇게 높은 곳에서 해를 많이 받고 자란 사과는 더 달아보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눈에 띈, 특히 알이 굵고 다양한 붉은 색의 커다란 사과하나를 여러 번 깡총 뛰기 한 끝에 낚아채었다.

상큼한 사과를 바삭바삭 씹어 먹으며 더 깊은산속으로 걸어갔다.


오덴하임의 첫 인상은 나즈막한 산에 둘러싸인 작은 토스카나 같은 느낌이었다. 마을의 어디를 가든 커다란 호두나무와 사과나무, 자두나무가 있고,산의 가장 높은 지대에는 어김없이 와인생산을 위한 여러 품종의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독일 전국지도에서는 찾기 조차 힘든 작은 마을이지만, 오덴하임을 포함한 Nahe지역은 비옥한 토양과 건조하고 따뜻한 기후로, 질좋은 리즐링(독일의 대표적인 와인품종)과 Helmut Donnhoff과 같은 와이너리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남편의 고향이고지금까지도 시부모님이 살고 계신 오덴하임에서 휴가를 보내기로하고, 일기예보에서는 하루전까지 휴가기간동안 내내 춥고 비가 온다고 확인했을때, 그래서 실내에서 7살 남자아이 둘과 어떻게 휴가를 즐겁게 보낼지 고민하고 있을때에도, 시어머니는 '오덴하임은 날이 궂은 법이 없고, 비가 와도 늘 온화한 날씨란다.' 하셨다. 실제로 놀랍게도 대부분 화창하고 포근했다.

겨울이든 봄가을이든 (아직 오덴하임의 여름은 본 적이 없다.) 지대가 높아 낮에는 항상 따스한 햇살이 어딘가를 비추고 있다. 해가 질 무렵에는 금빛이나 붉은빛의 윤슬이 산등성이를 타고 띠모양으로 물결치며 사라진다.

어느 길에서부터는 바닥이 온통 물컹한 과일 천지였다. 다시 보니 모두 서양배였다. 올려다보니 커다란 배나무가 길가까지 풍성한 가지를 뻗치고 있다. 잠시 망설이다가 가지가 거의 땅에 닿을 정도로 가득 열린 배들 중에서 하나를 손에 쥐었다.


문득 어린아이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혹시나 누가 볼까 사색을 하는 척하면서, 실은 손에 넣은 배를 야무지게 베어 그저 달콤하고 시원한 맛의 감각에 집중할뿐 다른 생각없이 그냥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서양배를 먹을 때마다 피노키오를 떠올린다. 동화속에서 세상에 시달리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온 피노키오가 배를 껍질까지, 나중에는 단단한 배 속까지 먹어치운다.


한참을 걷고 나서 마을의 끝을 알리는 표지판을 뒤로 하고 오던 길을 돌아올 때 나는, 두어시간동안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고, 아무와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탈길을 돌아서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훨씬 더 짧게 느껴져서 아쉽기까지 했다.

이 곳에서 아마도 영원히 이방인일 나는, 사실은 살아온 대부분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대하며 지내온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산을 내려왔다.


2.

마을에 가까워졌을때쯤, 누군가가 자전거를 끌고 산비탈을 오르고있다. 익숙한 얼굴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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