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햇살이 쏟아졌다. 창문을 열어 밖의 공기를 느껴보니 햇살은 있지만 공기는 차가웠다. 두께는 얇지만 따뜻함을 주는 베이지색 니트 옷을 꺼내 입고 외출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아침 일찍 둘째 아이 초등학교에 가야 했다. 2주 동안 집에서 공부할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수업자료를 받으러 가야 했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있어서 걸어서 5분 정도면 도착한다. 아직 출근 전인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나는 학교로 향했다. 적당히 불어주는 봄바람에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봄꽃의 향기가 나의 코를 자극한다.
작년 봄에도 적당한 봄바람이 불어 주었을 거고, 봄꽃의 향기가 나의 코를 자극했을 텐데... 수없이 지나갔을 이 길의 봄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에게 주어지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기에 꽃의 향기와 봄바람이 주는 좋아지는 기분을 느껴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집밖 외출에서 이제야 느껴본다. 그냥 지나쳤을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학교 교문 앞에 도착해 열체크를 하고 둘째 아이 담임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어야 할 학교가 마스크의 답답함을 알리는 나의 숨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언제쯤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언제쯤 마스크의 답답함을 알리는 숨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을까?
텅 빈 학교 앞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첫 초등학생이 되는 둘째 아이가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상상 속 운동장 옆길로 담임선생님이 걸어오시고 있는 것이 나의 시선에 들어왔다. 상상 속의 학교의 모습은 잠시 넣어두고 재빠르게 선생님 앞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머님!" 마스크를 쓴 채 두 눈만 보이는 둘째 아이 담임선생님과 나는 눈과 마스크로 가려진 입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큰소리로 말을 하지 않으면 잘 들릴지 않는다. 목소리가 잘 들릴지 않아 듣고 싶어 하는 귀는 점점 말하는 사람에게 가까워진다. 담임선생님과 대화도 그랬다. 평소에는 적당한 목소리톤이 마스크를 하고 말을 하니 잘 들리지 않았다. 띄엄띄엄 들리는 말의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아 나의 귀는 담임선생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그런 나의 불편함을 눈치채셨는지 담임선생님도 나의 귀 쪽으로 좀 더 큰 목소리로 아이가 2주 동안 집에서 공부할 온라인 수업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5월은 어린이날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도 준비하셨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시면서 중간중간 마주치는 둘째 아이 선생님의 두 눈은 "참 친절하시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만큼 선한 눈빛을 보여주시고 계셨다. 친절한 목소리, 친절한 두 눈으로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던 둘째 아이 담임선생님의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스크 속에 가려져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는 두 눈으로 보이는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고, 아이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선생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공익광고의 말처럼 얼굴의 반은 가렸어도 마음은 보이고 있었다.
얼굴은 가려도 마음은 보인다
적당히 불어주는 봄바람, 코를 자극해 주는 봄꽃 향기, 두 눈으로 보여주는 친절함에 너무 기분이 좋아진 시간이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은 누군가에게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냥 지나쳤을 사소한 것에서 발견한 기분 좋은 시간들로 인해서 오늘은 뭐든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