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맥시멈 라이프

비워내려고 하는 나. 채우려고 하는 남편

by 새나

투닥투닥거린다. 하나라도 더 채우기를 원하는 남편. 하나라도 비우기를 원하는 나. 우리 가족이 생활할 실내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지 남편과 대화 중 서로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사를 오면서 그동안 묻혀 두었던 오래된 물건들.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 부서지고 망가진 물건들을 모두 버리고 왔다. 20리터 쓰레기봉투 40여 봉지가 넘고. 50리터 쓰레기봉투 10장 정도. 불필요한 것들을 많이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것저것 정리하면서 쓰레기봉투로 들어가는 물건들을 보고 있으니 이 모든 것들을 꾸깃꾸깃 처박아 놓고 살아왔던 그동안의 시간이 한심해 보였다. 더 넓게 사용할 수 있었던 아이들의 놀이공간. 더 넓게 사용할 수 있었던 다용도실. 찾으려고 애쓸 필요 없이 눈앞에 딱 보이게 정리할 수 있는 공간들을 모두 잃어버린 체 살아온 나에게 중얼거렸다.

"치우고 좀 살지... 이렇게 어떻게 살았니? 진작에 치울걸..."



이번에 이사를 가면 절대 쓸모없는 물건들을 언제 가는 사용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꾸깃꾸깃 처박아 놓고 살아가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미니멀 라이프 나도 한번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1년 이상 한 번도 손 이 가지 않던 옷가지들. 신발들. 주방식기류. 미니 가전류를 싹스리 버려 버렸다. 내 물건부터 비워내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아이들 물건들. 유아기 때 사용하던 장난감 위주로 모두 쓰레기봉투와 재활용에 넣어 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아들의 통곡이 시작되었다. 자기가 아끼던 포클레인 장난감을 찾을 수 없다고 엄마가 버린 것 같다고. 빨리 다시 가지고 오라고. 몇 날 며칠을 울어대고 칭얼대던 아이의 모습에 새로운 포클레인 장난감을 사주기로 약속하고 난 뒤 아들의 투정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들 물건을 나의 기준에서 비워내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과 함께 각자가 버릴 것을 선택하게 해 주었다. 아이들 물건들은 많이 비우지 못한 체 그대로 이사한 아이들 방에 고스란히 넣어 두었다.


남편 물건들 역시 누렇게 변색된 옷가지들. 결혼 후 10년 동안 입은 것을 보지 못했던 외투들. 싹스리 버려버렸다. 내가 말하지 않는 이상 그런 옷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을 듯하다. 그리고 남편이 읽는 적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영웅문이라는 책들. 오래된 책이라는 것을 말해주듯 누렇게 변색된 책이 색깔.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가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는 책을 버리기 위해 노끈으로 묶어 두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이 본인의 책들이 노끈으로 묶여 있는 것을 보고 혹시 버리려고 이렇게 해놓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남편은 절대 버릴 수 없다고 내가 10번도 넘게 읽어던 책이고 앞으로도 읽을 책이라고 절대 버릴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남편의 물건들도 고스란히 새집으로 옮겨져 왔다.


비워내고자 하는 나에게 남편은 공간의 허전함이 보인다고 뭐라도 채워 넣기를 바랐다. 우리가 살집을 꾸미기 위해 남편과 나는 수없이 투닥대고.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혔다. 몇 번은 서로 토라져 말을 하지 않은 적도 있다. 우리는 타협점을 찾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1층은 온전히 내가. 2층은 온전히 남편이 꾸미는 것으로 했다. 소품과 미니서랍장을 구매할 때도 서로의 의견에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바람대로. 생각대로 집 꾸미기를 시작했다.


남편은 하나라도 더 채워 넣기를 하면서 예산이 초과되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지출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신경을 안 쓸려고 애쓰고 애써도 다음 달 카드값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은근슬쩍 그동안 사용했던 카드내역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집을 꾸미면서 사용한 내역 중간정산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동안 사용한 카드내역과 현금 입금내역을 보여주니 남편은 이렇게 많은 돈이 지출되었는지 몰랐다고 다음 달 카드 결제일이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남편은 잠시 집 꾸미기를 위한 채워 넣기를 중단했다.


지금도 충분히 내 눈에는 예뻐 보이는 2층 거실인데 아직도 허전한 공간이 보인다고 무엇인가를 채워 넣기를 바라고. 아이들 방은 이미 장난감과 옷들로 포화상태인 듯한데 벽면의 허전한 공간을 무엇인가로 채우려고 한다.



안방은 침대와 수납장. 자주 입는 옷을 걸 수 있는 미니 행거 그 외에는 두지 않았다. 잠을 자기 위한 공간으로 불필요한 것은 넣지 않고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넣었다. 1층 거실은 식사와 책 읽기. 글쓰기. 아이들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기존 집에서 사용하던 테이블을 그대로 1층 거실 한가운데에 놓아두었고 더 이상 아무런 가구를 놓아두지 않았다.




2층 거실은 소파와 아이들 책장으로 가득하다. 아직 더 채워질 것이 있는 2층이다. 빈 공간에 장식장을 놓아둘 예정이고 책장도 하나 더 채울 생각인 듯하다. 아직 채워야 될게 많다고 이야기하는 남편이다.



아이들 방은 기존의 장난감과 옷가지들을 그대로 정리해서 놓아두어야 했기에 수납장과 행거 옷걸이 외에는 더 이상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는 공간이다. 지금도 충분히 꽉 찬 공간인데. 아이들 방 역시 남편은 채울게 남아있다고 한다.


미니멀과 맥시멈 누가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나의 관점에서. 나의 생활패턴에 맞게 비우기도 하고. 채우기도 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듯.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거실 창을 너머로 보이는 우리 집 작은 마당을 보면서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두 눈을 비비고 아들 녀석이 조심히 계단을 내려고 있다. 나만의 새벽시간은 아이들의 기상으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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