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민맘 Sep 04. 2023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17세기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충족 이유율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으며, 모든 사건에는 그 사건이 그렇게 벌어질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이유 없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 어떤 사건도 이유 없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평범하게 비범한 철학에세이 중에서>


날카로운 말에 베인 적이 있는가. 요즘 줄곧 날카로운 말에 마음이 자주 베이고 만다. 단단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무심코 던져지는 말에 가슴이 저릿해진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게 들어온 말들은 아주 오랫동안 머문다. 


고민을 털어놓는 A.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그의 속상함에 함께 속상해했다. 그의 짜증에 함께 짜증을 내주었다. 그가 의견을 물었다. 

"어떡하면 좋을까"

나는 대답했다.

"나의 생각은 이래. 하지만 너의 마음이 젤 중요하다고 생각해."

말하는 재주보다는 듣는 재주 쪽이 더 나은 나다. 그러다 가끔 나의 의견을 묻는 사람들에게 솔직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나의 말에 A는 기분이 상한 듯해 보였다. 온전히 자신을 위로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나의 조언이나 충고 따위는 필요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더 이상 나에게 위로 따위는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러니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만 같았다. 온 마음을 다해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고 걱정을 나누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의 태도에 마음이 일렁거렸다.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람들의 말에 자주 베이며 살고 있다.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려 만. 미련한 탓인지. 멍청하게 되돌아오는 말까지 피하지 못한다. 독일철학자 라이프니치는 어떤 사건도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은 없다고 한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에 일어나고 보이는 것이다. 아마 그날 A에게 나의 어떤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나의 조언이 듣기 싫은 잔소리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입장에서는 조언이지만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잔소리일 수도 있으니. 그가 그렇게 화를 낸 이유를 여러 시선에서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주 작은 이유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요즘 과부하 상태다. 금방이라도 폭발해 버릴 것 같은 빵빵한 풍선이었다. 어떤 말을 한다고 한들 그에게 들리지 않았다. 


A를 아주 조금은 이해하고 싶어 졌다. 그의 허덕이는 삶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서운한 내 마음은 잠시 미뤄두고 A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쓰고 애썼다.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지만 A가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서운한 나의 마음에 대한 배려였을까. 어색한 공기 속에서 우리는 그냥저냥 서로의 일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우리가 만난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우리가 이토록 다투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 무언의 시간들도 다 이유가 있음을. 


그렇게 믿고 싶은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에 공짜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