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는 당신의 마음에 있다
2018.2월
걱정이 일을 만든다.
당신이 아무리 자기 단속을 잘하고 조심히 행동해도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헐뜯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악함을 위해 살기보다 선함과 사랑을 위해 사는 존재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심리적인 결점뿐 아니라 신체적인 결함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그중 어떤 사람은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삶의 어려움을 이겨나가고 있음을 말이다.
또 다른 세계는 당신의 마음에 있다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그것을 꺼내어 실제의 삶으로 확대할 수 있다.
모든 실수가 다 만회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고 반드시 즐거우리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 받을까 책 내용 중에서 -
2018년 설 명절날이다.
공인중개사 입문 동영상 강의를 모두 듣고 초급으로 들어가기 직전 설 명절이 되었다.
고득점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중개사법에 많은 비중을 두었고, 그다음 공법이었다.
공법은 12월 입문 강의에서부터 다음 해 10월 시험을 치기 직전까지 꾸준히 그날그날 분량의 공부를 해야지만 내가 목표한 평균 60점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공시법과 세법은 중개사법이 어느 정도 틀이 잡히게 될 5월부터 집중해서 공부를 이어 나기로 했다.
공인중개사 동영상 강의를 해주는 교수님들도 나의 공부 스타일에 맞는 교수님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교수님이 있다.
무료 동영상 강의 사이트라도 한 과목에 2~3명의 교수님들께서 강의를 하고 계셔서 처음 시작할 때 여러 명의 교수님 강의를 들어보고 나에게 잘 맞는 교수님 강의를 선택하는 것도 공인중개사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나 역시 처음 선택한 교수님의 강의가 나와 맞지 않아서 중간쯤 다른 교수님 강의를 들어 보니 훨씬 이해하기도 쉬웠고 나의 공부 패턴과도 잘 맞았던 기억난다.
작년 공인중개사 1차 시험을 준비할 때 맞이 했던 추석 명절은 공부를 준비하면서 처음 경험해 보았던 가족들의 의도치 않은 무관심에 상처를 받았지만 올해 설 명절은 나의 명절에 공부하는 노하우가 있었기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설 명절 전날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여 차례에 올릴 전을 굽고 야채들을 다듬어 삶고 볶고를 반복하면서 설 명절 차례음식 준비가 끝이 났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나의 전 굽는 속도와 실력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날 설 명절 차례음식은 오후 1시가 되지 않아서 끝났으니 말이다.
보통 차례음식을 준비하게 되면 아침에 시작해서 오후 4~5시 정도에 모든 것이 끝이 났으니 3~4시간은 줄어들었다.
설 명절 당일 차례음식을 차리고 치우고를 반복하고 있을 때쯤 친척분들이 우리 집으로 오시기 시작하셨다.
그중에는 재작년 결혼을 한 남편의 사촌동생 부부도 함께 였다.
나는 남편의 사촌동생을 도련님이라고 불렸고 도련님과 결혼한 사람은 동서라고 불렸다.
나보다 손아랫사람이지만 우리 집에 온 손님이었기에 점심을 차려 주었고 설거지 조차 내가 했다.
그날 우리 집에 계셨던 모든 어른들이 이런 나의 행동에 아무런 말이 없으셨기에 당연히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몇 년 동안 나의 몸에 배어 있기도 했고 결혼을 하고 첫 친척집 나들이라 긴장해 있을 동서에 대한 작은 배려이기도 했다.
나의 첫 신혼여행을 돌아와 시댁의 친척분들께 인사를 드릴 때의 긴장감을 알고 있었기에 동서의 마음도 그러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나의 시점에서 바라보았기에 그리 보였던 것뿐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배려받지 못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런 시선으로 동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불편할까?'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겠지?'
'어색하지 않을까?'
내가 신혼초에 느꼈던 그 감정을 당연히 동서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서는 자상한 도련님의 배려라는 울타리 속에서 보호받고 있었다.
그것을 느끼게 된 것은 밀려 있던 설거지와 전이 담겨 있던 3개의 소쿠리를 다 씻고 잠시 소파에 앉아 한숨 돌리고 있을 때 나의 눈에 도련님의 행동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밀려 있던 설거지와 넓려 져 있던 식기들을 바쁘게 정리하고 있었기에 나의 세계 속에 갇혀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기준에서 바라보았던 동서의 불편함과 안쓰러움은 나의 마음의 세계였던 것이다.
나의 불편함
나의 안쓰러움
나의 배려받지 못하고 있는 모습
나의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 친정으로 가고 싶은 마음
동서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모습이었다.
내가 동서의 불편함과 어색함을 배려하면서 했던 행동들은 내가 누군가에 받고 싶었던 배려와 행동이었다.
나의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현실적인 눈으로 바라본 동서는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친척분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도련님의 무한한 배려도 함께 말이다.
남편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른 지 이것 가져달라 저것 가져달라 주문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쉰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남편의 모든 주문들을 들어주고 나는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의 공부를 시작했다.
공법 기출문제를 풀고 채점하고, 중개사법 기출문제를 풀고 채점하고를 반복하면서 서운했던 마음, 부러웠던 마음, 이해받고 싶은 마음들을 내 마음속 세계에서 잠재우고 있었다.
회사를 다니고 있던 동서는 이번에 진급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서 일찍 집으로 돌아가 봐야 된다고 도련님이 발 벗고 나서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중요한 시험이라 집에 가서 공부를 해야 된다고... 어제도 밤늦게 까지 공부를 하다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꿀 떨어지는 도련님의 동서에 대한 배려가 참 부러웠다.
나도 공부 중에 있는데...
나도 어제 새벽까지 공부를 하다가 늦게 잠들었는데...
나는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는데...
유치해져 버린 나의 마음이 나도 알아달라고 요동치고 있었다.
또 다른 세계는 당신의 마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