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가시투성이었다. 날 선 마음은 날 선 말들을 던져 댔다. 별일 아닌 일로 짜증을 부리고 신경질을 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날들이 무색해질 만큼 온 마음이 뾰족이 투성이었다. 서로의 힘듦을 알기에 나의 걱정을 풀어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 바랐고, 고단한 삶을 위로해 주기 바랐다.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한없이 마음이 납작해졌다.
둥글해지고 싶었다. 이리저리 굴려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싶었다. 이번 여행에서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파타야에서도 탕후루는 인기다. 얼마 남지 않은 탕후루를 하나 샀다. 탕후루의 찐득거리는 맛을 좋아하지 않는 나다. 아이들은 게눈 감추듯 탕후루를 순식간에 먹어 버렸다. 하나 더 사주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은 품절이었다. 태국의 시장은 밤에 활기를 띤다고 했다. 해가지지 않아 아직은 한산한 모습이다. 여행 내내 숙소에 들어가기 전 한 번은 꼭 야시장 투어를 했다. 자유시간이라 좋았다. 정해진 시간 안에 보고 싶은 만큼 보고 버스 안으로 돌아오면 된다. 시간만 제대로 잘 지켜주면 문제 될 일이 없다.
규모가 작은 시장이라 그런지 물건들이 많지는 않았다. 남편이 신을 만한 슬리퍼가 있어 하나 샀다.
시장에 가면 그 나라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일찍 와버려서일까. 작은 시장이어서 일까. 눈에 담고자 했던 시장의 풍경이 아니었다. 느린 걸음으로 시장 구경을 하고 버스로 향했다. 주어진 시간보다 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다른 일행들도 하나둘 버스로 돌아왔다. 다들 같은 생각인 듯 양손이 가벼웠다.
시장에 사람이 없어 좋았던 점은 하나 있었다. 한적한 가게에서 아이들 스스로 물건을 고르고 계산까지 할 수 있었다. 태국 상인들은 간단한 한국어를 조금씩 한다. 조금은 서툰 말투이지만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지비츠 액세서리 사장님은 친절했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캐릭터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NO.NO"를 외치며 빙그레 웃었다. 아이들 취향은 아니었나 보다. 사장님은 또다시 다른 제품을 추천해 줬고 아이들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서로의 취향이 다르다는 걸 인정했는지 더 이상 추천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각자 세 개의 지비츠를 구매했고 계산도 마쳤다. 'Thank you'를 외치는 아이들과 '컵쿤가'를 말하는 사장님 사이에 동글한 미소가 번졌다.
태국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친절했다. 둥글게 찍히는 마음이 좋았다. 어쩌면 둥글해진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호텔 근처 편의점에서 만난 머리가 긴 20대 점원은 햄버거를 따뜻하게 데워 주었고, 곱슬한 짧은 커트 머리 호텔 프런트 남자 직원은 조식 확인을 위해 필요했던 방 열쇠를 반납해 버린 우리를 위해 방번호를 알려 주었다. 흔들리는 보트 위에서 넘어질 뻔한 아이의 손을 잡아 주었던 구릿빛 피부의 안내요원, 친절한 미소를 건네주던 파타야 시장 젊은 상인과 넉넉한 풍채만큼 다정함이 가득했던 지비치 상인, 아로마 마사지 샵에서 상처를 공감해 주었던 마사지사까지. 태국에서 만난 다정하고 친절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여행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행의 풍요로움은 그 나라의 경치만으로는 채울 수 없다.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건네는 다정한 온기가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이번 태국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 보내온 따스하고 아름다운 기억들은 또다시 여행을 떠나게 해주는 용기와 기대를 마음에 새겨 주었다. 둥글게 찍히는 마음들이 다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