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아주 먼 지평선위로 흐릿한 무언가 보인다. 대한민국 부산일지도 모르는 흐릿한 형체가 누군가의 눈에는 보이고 누군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분명 나의 눈에는 보였다.
대마도 한국전망대에서는 날 좋은 날 부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거다. 설마 하는 마음에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도 뭔가 보인다는 듯 하나둘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기~~~"하며 손을 번쩍 드는 여행객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흐릿한 형체가 보였다. 섬 같기도 하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같기도 하고, 확실히 부산이라고 말하기는 애매모호한 형체였다.
대마도 까지 와서 부산을 왜 이리 찾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남의 나라에서 우리나라 라면 상표만 봐도 애국심이 뜨겁게 올라온다.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감정이다. 그 감정이 한국전망대 앞에서 끓어오르는 중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흐릿한 형체를 바라보던 나와 또 다른 여행객들은 그것이 부산이라고 정의 내렸다. 부산인 것 같다는 약간 애매모호한 결론이기는 했지만.
급류가 거세고 암초가 많아서 돌풍이 불 때는 지형에 익숙한 주민의 어선도 난파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통신사들도 이 포구로 들어왔다. 숙종 29년 대마도에 오던 108명의 역관사가 갑자기 불어 닥친 돌풍으로 배가 전복되어 모두 죽은 것을 기린 위령비가 한국전망대 왼편에 세워져 있다.
악어의 모습을 한 마을의 지형이 독특하다. 한없이 잔잔해 보이는 바다가 어느 순간 포악한 돌풍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 악어 모습을 닮았다.
단체 여행객들을 인솔하는 가이드는 위령비 앞에서 역사를 기억해 낸다. 그들이 조선의 역관사들이 대마도를 찾아오던 그날에 대해 말한다. "조선통신사, 돌풍, 바위, 전원 사망"과 같은 단어들이 들렸다. 대마도 관광지에는 대부분 한글 설명이 되어 있어 좋았다. 가이드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듣지 못하지만 간략하게 관광지를 소개하는 문구들이 여행을 기억하게 한다.
밤이면 부산의 높은 건물 불빛이 반짝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밤에 다시 찾지는 않을 거다. 스쳐 지나간 여행객은 밤에 다시 오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 여행객들은 밤에 다시 왔을까. 낯선 땅에서 바라본 부산의 불빛을 마주했을까. 익숙한 것은 안정감을 준다. 낯선 불안을 달래는 것은 익숙함이다. 이 낯선 땅에서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오래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아주 먼 시간 전에 이곳을 찾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바다가 자신들을 삼켜 버릴 거라고 생각했을까. 낯선 바다 위에서 만난 낯선 불안은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 한 익숙한 부산을 찾는다.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익숙한 땅을 바라본다.
곧 우리는 떠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바다를 건너 익숙한 땅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