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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시 Oct 26. 2024

히노끼의 아침

일본의 전통 가옥은 목재를 사용한 목조가옥이 많다. 편백나무로 지어진 숙소 내부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나무향이 난다. 온통 편백나무 향이 가득하다. 하나의 건물에 두 개의 방이 나눠져 있다. 나무로만 지어져 있어서 인지 방음은 좋지 않다. 옆방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다 들린다. 의도하지 않게 옆방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야기였다. 술을 조금 마신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고 애교스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리는 옆방의 대화였다. 옆방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큰 소리로 대화를 해야 했다. 누가 누가 더 큰 목소리로 말하는 대화의 장이 열렸다. 




그들의 이야기는 새벽 늦게 까지 이어졌다. 고요한 새벽이라 그들의 목소리는 더 크게 좀 더 선명하게 들렸다. 다. 그들의 목소리가 조용해질 때쯤 우리도 잠들 수 있었다.


오션뷰를 선택했다. 아침에 일어나 바다의 풍경을 담고 싶었다. 방 창문으로 보이는 바다가 신비롭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다. 붉게 타오르는 지평선을 바라본다. 


습관은 여행지에서도 변함이 없다. 다섯 시에 일어나는 나의 일상이 여행지에서 어어진다. 몇 시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음에도 다섯 시에 눈이 떠졌다. 피로감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견딜만했다. 창문 밖 풍경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늦잠을 자면 볼 수 없는 풍경이지 않은가. 잠들어 있는 하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곧 해가 뜰 것 같다고. 얼른 일어나라고. 하는 두 눈을 슬그머니 뜨더니 손을 흔들었다. 해 뜨는 건 안 봐도 괜찮다는 표현이다. 잠들기 전 꼭 깨워 달라는 하는 다시 깊은 잠이 들었다. 해 뜨는 거 보는 것보다 잠자는 게 더 좋을 열세 살이다. 


이번에는 자고 있는 민이 귀에 속삭였다. 곧 해가 뜰 것 같으니 일어나라고. 민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민이도 자는 게 더 좋을 열두 살이다. 


남편에게 속삭였다. 곧 해가 뜰 것 같다고. 남편은 두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자는 것보다 해 뜨는 걸 더 보고 싶은 마흔 중반의 두 남녀는 창문을 열고 더 선명한 바다를 바라본다. 


해가 뜨고 있다. 우리는 침묵했다. 몇 가지 이루고 싶은 바람을 말하기도 했다. 마음으로. 나만 알 수 있게. 


남편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창문에 걸터앉은 남편 뒤로 드 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푸르스름한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곳에 해가 떠오른다. 고기잡이 배가 바다 위를 떠 다닌다. 어부의 하루는 좀 더 일찍 시작한다. 모두가 잠든 사이 어둠의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해가 뜨면 다시 육지로 돌아오는 그들의 배가 만선이기를 바라 본다. 


그림 같은 풍경은 시시각각 변했다. 드 넓은 바다와 푸른 숲은 해가 비추는 빛에 따라 더 반짝이거나 좀 더 선명해졌다. 


하나의 생각에 매몰되어 있는 나다.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다. 바다에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바다를 보고 있으니 그리 해도 될 것 같았다. 왠지 모든 걸 품어 줄 것 같은 바다의 너그러움이 느껴졌다. 여러 번 던지고 또 던졌다. 사라졌겠지 생각했다. 사라졌을 거야 기대했다. 기대가 실망이 되는 경험을 여럿 한 나다. 실망이다. 벗어던지지 못했다. 굳게 박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생각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하는 걸까. 그래야 이 지긋지긋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답은 내 안에 있다지만 그 답을 여전히 찾지 못했다. 


우리가 머문 숙소의 기억은 히노끼의 아침이다. 바다의 풍경에 오랜 시간 머문 우리다. 방안에 가득한 편백향과 이국적인 온도가 여행을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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