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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시 Oct 23. 2024

미우다의 시간

여름 여행에서 바다를 빼놓을 수는 없다. 우리의 시간은 미우다 해수욕장에 머물렀다. 날이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많다. 대마도 여행 중 이즈하라 도심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본 적은 처음이다. 간혹 단체 여행객들을 마주 했지만 잠깐 스치는 정도라 머물렀다고는 할 수 없다. 미우다 해수욕장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머물렀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 그늘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미우다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고운 모래사장을 걷는다. 아이들도 신발을 벗어던졌다. 뒤집어진 신발을 한쪽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여름은 역시 바다다. 여행 내내 지겹도록 따라다닌 여름햇살도 이곳에서는 반갑다.


삼삼오오 모여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틈에 우리는 여행을 기억할 사진을 찍었다. 그들처럼 물속으로 들어갈 준비도 용기도 없다. 발목이 물에 반쯤 잠기는 정도만 허락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아무래도 그곳이 인생컷을 남기기 위한 장소인 듯하다.  기다림을 지루해하지 않는 듯 표정이 밝다. 민이 바지가 물에 반쯤 잠겼다. 예견된 일이었다. 물속에 들어간 아이에게 적당히 노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음을 내려놓았다. 햇살 좋은 날이어서 다행이었다.

남태평양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같은 색깔에 깨끗한 바닷물이 매력적인 장소다.  입자가 고운 천연 모래사장이 있어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히타가츠항에서 가까워 당일여행을 즐기는 여행객들의 필수 여행지이기도 하다. 미우다 해수욕장에 가면 거의 한국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많다. 그날의 미우다 해수욕장에는 일본인 가족들도 여럿 있었다. 곳곳에서 일본어 대화들이 오가는 소리를 들었다. 샤워실과 화장실 그리고 정자 등이 설치 되어 있어 잠시 쉬어 가도 좋다. 개장 기간을 제외한 기간에는 해수욕은 금지다.


저마다 미우다의 시간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십대로 보이는 서너 명의 여자 목소리다. 벗어둔 신발을 연필 삼아 모래사장 위로 무엇인가를 쓰며 까르르르 웃는다. 저 때는 뭘 해도 즐거운 나이니깐. 지나고 보면 알게 되는 나이 이십 대가 아닐까. 무엇을 쓰고 있기에 저렇게도 즐거울까. 서로의 어깨를 치고, 손을 잡고 몸을 비틀거리며 웃는다. 그녀들의 웃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 빙그레 나도 웃는다. 민이와 하도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궁금한지 흠칫 바라보다 이내 흥미를 잃고 물속을 첨벙 대며 걷는다. 두 팔을 벌리고 다리를 한쪽으로 쭉 뻗으며 사진을 찍는 그녀들은 한바탕 웃음을 남기고 유유히 걸어간다. 멀어지는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옅어지고 모습은 사라졌다. 무엇을 쓰며 그리 웃었을까 궁금해 살그머니 다가가 본 나다. 'TSUSHIMA'  그녀들이 적으며 깔깔깔 웃었던 단어는 쓰시마다. 쓰시마는 대마도의 일본식 이름이다.


어느 날 문득 꺼내든 사진첩에서 스무 해 전 우리가 떠났던 어느 작은 섬을 기억해 낼지도 모른다. 함께 웃고 즐기던 미우다의 시간이 그녀들의 사진 속에 담겼다.

하와 민이는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이쪽으로 한번 걷다가, 저쪽으로 한번 걷다가. 지루해 보이는 몸짓임에도 얼굴은 미소를 한 아름 담고 있다. 저 멀리 배가 보인다. 여객선 같기도 하고, 어선인 것 같기도 하다. 길게 늘어섰던 줄이 사라졌다. 하와 민이를 불러 바위 앞에 세웠다. 미우다의 시간을 기억하는 사진을 남겼다. 날이 좋아서, 공기가 맑아서, 웃음소리가 상쾌해서 더 많은 사진을 찍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하와 민이 모습도 담았다. 동영상도 한편 찍었다. 여행이 끝나고 그날의 시간의 그리워질 때 플레이 버튼을 눌러보기로 했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눌러보지 못한 플레이 버튼이다. 하와 민이는 미우다의 시간을 까마득 잊고 있다. 기억하는 건 나 하나뿐이다. 여행이 끝나고 몇 달은 그런 것 같다. 여행지의 기억이 자주 그리워진다. 다시 그곳을 향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왜 그곳이 그립냐고 묻지만 왜인지 답하지 못했다. 그냥 좋아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이곳 작은 시골마을에 있다.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그곳의 시간이. 이야기가 좋다.


타코야키를 먹는 시간. 갑자기 비가 내렸다. 이게 웬일. 그렇게 맑더니 비가 내린다. 해수욕을 하던 사람들은 비 소식에도 여전히 바닷속에 있다. 우리는 타코야키 마지막 한알을 입에 넣고 미우다 해수욕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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