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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시 Oct 23. 2024

숲의 포옹


슈시 편백나무 숲길은 대마도의 숲길 중 하나다. 편백나무의 은은한 향기와 아름다운 숲길은 여행객들에게 휴식과 치유의 기회를 준다. 숲깊을 따라 걷는 동안 숲의 품에 안긴 것 같은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히노끼 대욕장에 들어 온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편백나무 향이 가득하다. 한움큼 코로 향기를 들이 마시고 입으로 내뱉는다. 기관지가 약한 민이와 남편은 더 많이. 더 자주 들숨 날숨을 이어갔다. 

숲이 고요하다. 대마도에서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는 이즈하라 도심이다. 그것마저 빼곡한 사람들이 있는 건아니다. 듬성듬성 사람들이 걷거나, 단체 관광객들을 보는 게 전부다. 


우리를 위한 숲길이 거기에 있었다. 이곳 숲은 편백나무 뿐만 아니라 삼나무와 소나무도 있다. 가을이면 삼나무 단풍을 보러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뭐든 아름다울 것 같다. 지금은 싱그러운 잎들이 가득한 숲이다. 삼나무는 태풍을 막아주는 역활을 한다. 대마도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치열 했는지. 꺽이고 부러진 삼나무가 그곳에 있었다. 

더 가까이 숲을 느낄 수 있는 돌다리가 보인다. 우리는 조심스레 물이 흐르는 곳으로 내려 갔다. 돌다리를 건너면 우리보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있다. 그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울창한 숲 틈사이 비치는 햇살이 미묘한 풍경을 더한다. 영화속 한 장면속에 들어 온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조금은 느린 걸음으로 숲을 지나간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곳에 있었을까. 처음 그들도 어린 나무 였겠지. 수많은 폭풍을 견녀 낸 나무들만 숲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거다. 


그들을 보러 이곳을 찾는 수많은 여행객들에게 따스한 포옹을 건네는 숲길이다. 


세상살이가 만만하지만은 않다.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무게는 더 해지는 것 같다. 철 없던 시절을 자주 그리워 한다. '안되면 뭐 어때 또 하면 되지'를 외쳤던 나다.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다른 선택지가 많았다. 친구든, 공부든, 직장이든 그때는 그랬다. 젊음에 대한 특권이였을까. 나라는 사람은 변한게 없는데 아니 어쩌면 그때 보다 더 성숙한 인간일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왜. 선택지는 줄고, 불안과 조급함만이 가득한 걸까. 


숲길을 걷는 동안은 세상살이의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어 올 틈이 없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눈으로 담고, 코로 들이 마시며 귀로 듣고, 손으로 느끼는 숲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숲과 나의 시간은 빈틈이 없었다. 


우리는 자주 침묵했다. 그래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압도 당했던 걸까. 숲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아무에게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메아리를 받아 내듯 말했다. 

"좋다"

숲의 기억은 포옹이다. 아무말 없이 품어 주는 숲의 너그러움에 조급한 마음이 더이상 속도를 내지 않았다. '천천히 가도돼. 늦으면 어때.' 마음 속으로 스며드는 문장들을 기억한다. 숲이 건네는 말이라는 것을 안다. 인간과 자연의 대화는 느끼는 거라 생각한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우리는 느낀다. 수많은 별들 중 나의 별이 있을 거고, 그 별 역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고. 대마도 밤하늘에는 별들 천지다. 밤에 올려다 본 하늘이 어쩜 그리도 반짝이는 지. 사진에 담는 대신 기억에 담았다. 사진은 그 순간 모든 것을 담아 내지 못할 것 같아서.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단체 관광객 버스가 주차장을 향해 천천히 달리고 있다. 우리가 걸어온 숲길은 버스안 여행객들이 또다시 걷겠지. 그들도 침묵하겠지. 숲과 어떤 대화를 나누다 갈까. 아직은 떠나고 싶지 않은데. 길은 끝이 났고, 시간은 흘러 간다.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린다. 고요하던 숲이 떠들석 하다. 가을에 오면 더 이쁘다는 어느 여행객의 이야기를 듣는다. 대마도 여행이 처음은 아닌 듯하다. 자건거 여행도 괜찮다고 말한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왔었다는 이야기가 오간다. 버스 안에는 이미 숲길을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과거 여행담을 늘어 놓는 소리가 숲을 채웠다. 그들은 숲이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쉼없는 이야기에 틈이 보이지 않았다. 저마다의 여행법이 있는 거니깐.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숲의 침묵이 깨졌다. 돌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린다. 사람이 왔다. 이곳 숲에 사람이 있다. 숲은 고요했고 사람의 목소리는 크게 메아리쳐 울렸다. 우리는 숲을 떠나야 한다. 이제 그만 숲의 포옹에서 나와 밖으로 나아가야 했다. 가을에 한번 더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객의 말에 가을날의 슈시 편백나무길이 궁금해졌다. 자전거 여행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민이와 하는 손사래를 친다. 우리는 자전거는 아니야. 자전거 여행은 머나먼 이야기로 남겨두고, 가을 여행을 기다린다. 


숲속이 고요해 졌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와 그들 사이가 멀어져서 일까. 숲의 포옹에 침묵을 선택할 걸까. 


민이 얼굴이 밝다. 편백나무 숲길의 청량한 공기를 듬뿍 마셨던 민이다. 여행 출발전 폐렴으로 고생한 민이에게 이곳 숲은 치유의 장소였다. 우리가 묵을 숙소 역시 편백나무로 지어진 곳을 선택했다. 완전하지 않는 몸으로 여행을 떠난 민이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하는 "좋다"는 말을 여러번 더 반복해 말했다. 하는 환절기만 되면 비염으로 고생한다. 하에게도 이곳 숲길은 치유의 시간이었을거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숲길을 즐겼다. 치유의 기회를 얻었다. 


여행의 시간은 흘러간다. 곧 우리는 여행의 끝을 마주하기 위해 시간을 걷는다. 숲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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