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맛의 기억은 흐릿했다. 짜거나 달거나 밍밍하거나. 일본 맛 기억이 왜곡되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그날의 몸상태가 좋지 않았거나, 방문한 식당의 맛이 애매모호했거나.
여행 중 만났던 일본 맛들을 사진에 남기기 잘했다. 흐릿해진 일본의 맛을 다시 기억해 내는 건 사진으로 대신했다. 몇 안 되는 사진에도 이름이 생소하다. 밥과 소바 반찬으로 단무지 몇 조각이 함께 나온 맛이다. 온천욕을 끝내고 먹은 저녁밥으로 기억한다. 밍밍한 맛이 애매모호했다. 미각을 잃은 것 마냥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몇몇 사람들은 그릇을 모두 비워냈다. 남편 그릇도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하의 그릇도 바닥을 곧 드러 내겠다. 민이 그릇과 나의 그릇이 닮아 있다. 줄어 들 생각이 없는 맛이다.
맛을 기억하는 방법은 모두 다르니깐. 남편은 온천욕을 끝내고 나와 먹었던 튀김소바를 제일이라 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은 맛이라 했다. 민이와 나는 강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했다.
일본 여행을 여러 해 다녀왔다. 어느 장소에 가든 맛을 기억해 내는 게 어렵다. 초밥과 회는 먹을 만하다. 아니 좋아한다. 여행 내내 초밥과 회로 식욕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여행까지 와서 한국 맛을 찾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꾹 참아내고 있을 뿐이다. 여행지의 맛도 여행의 일부분이니까. 그 나라의 식문화를 맛보고 즐기는 여행의 맛을 기억해 내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은 미흡하다. 어렵다. 맛의 기억이.
타코 야키:
이 맛은 기억이 난다. 겉은 바삭 안은 촉촉 하다. 새콤달콤 담백한 소스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대중적인 일본 간식이라 그럴지도. 한국에서도 자주 먹었기에 거부감이 없었을까. 한국 여행객들을 위해 한국스러운 타코 야키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일본의 맛을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이기에.
새로운 것을 마주하면 거부감부터 드는 게 사실이다. 매일 가던 산책길이 좋고, 자주 가던 단골집의 편안함이 좋다. 오래된 친구의 다정함이 좋고 자주 신는 허름한 운동화가 좋은 나다. 일본의 맛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맛이 문제인 듯하다. 일본 여행 중 먹었던 우동 맛을 잊지 못해 일본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보았다. 같은 우동을 먹으면서도 맛의 기억은 달라진다.
생크림 딸기 스무디 :
우리가 아는 그 맛이다. 공기와 날씨에 따라 어떤 맛을 느끼는지는 달라지겠지. 이 맛은 미우다 해수욕장이다. 청량하고 달콤하고 상큼했다. 일본의 맛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애매모호 하지만 미우다 해변에서 먹는 생크림 딸기 스무디니깐. 이것도 일본의 맛이라 기억한다. 유난히 뜨거웠던 팔월의 어느 여름 미우다 해수욕장에서 마신 생크림 딸기 스무디의 맛으로.
이름도 맛도 기억이 없다. 고기 완자 같기도 한데. 어쩜 먹고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걸까. 소스 위에 뿌려진 양념 맛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측해 낼 만한 맛이 없다. 왜곡된 기억들 뿐이다. 미우다 해수욕장의 맛이라고 밖에는 기억해 낼 수 있는 게 없다.
초밥과 우동 :
말하지 않으면 모를 듯하다. 한국에서 먹는 초밥과 닮았다. 맛도 닮아 있었다. 주인장이 일본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음식을 가져다주는 여인은 일본인이었다. 일본 만화에서 보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앞치마를 단정히 멘 할머니를 닮아 있었다. 음식을 놓아주며 슬그머니 웃는 미소도 닮았다. 일본어 몇 마디를 건넸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우동:
흠. 우동은 한국에서 먹던 맛과 닮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한국 식당에서 먹고 있는 건 아닌지 착각할 정도로 닮았다. 식당 안 일본인 점원들 말이 들리지 않았더라면 한국이라 생각할 정도로 한국맛이다. 일본 맛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본에서 한국 맛을 찾지는 않는다. 이날 우리는 의도하지 않게 한국의 맛을 즐겨야 했다. 우동과 초밥의 맛은 한국의 맛으로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일본가정식 도시락:
우리가 머물렸던 숙소 아침 조식으로 나온 맛이다. 흠. 이것도 애매모호했다. 음식을 남기기 싫은데 일본에서는 자주 음식을 남긴다. 당근이 올려져 있는 미역무침이 상큼했다. 달큼한 계란말이는 먹지 못했다. 계란의 맛이 울렁거림을 부르기에. 한입 베어 물고 그대로 내려놓았다. 입에 든 계란말이도 휴지 속에 넣었다.
일본 가정식 도시락이기는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간소화 식사를 한다. 그들의 아침식사는 밥 한 공기에 계란 하나를 넣어 간장에 비벼 먹는다. 반찬은 단무지 몇 조각이 전부. 녹차물에 밥을 말아먹기도 한다. 반찬은 단무지 몇 조각. 그들의 식문화를 느끼기에는 일본 가정식 도시락 반찬이 많아도 너무 많다. 한국인을 위한 숙소 주인장의 배려였을 거다.
삼겹살 해물 바비큐:
일본의 맛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맛이다. 야키니쿠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문 연 곳을 찾을 수가 없어 찾아 간 식당이다. 단체 여행객들의 식사 장소이기도 한 이곳은 개인 여행자들도 곳곳에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잘은 모르겠다. 한쪽 구석자리로 안내를 받고 바비큐를 즐겼다.
맛은 한국맛이다. 하지만 한국이라면 가지 않을 맛. 한국의 바비큐 맛은 세계 여행객들에게도 입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한 맛 아닌가. 그것에 비하면 이곳의 맛은 흐릿했다. 한국 사람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채소 접시가 따로 준비되어 나왔다. 채소는 한 번의 구이로 충분했다. 나도 아이들도 손이 가지 않았기에.
일본의 맛은 남편에게는 선명했다. 길거리에서 먹던 간식까지 모두 기억해 내는 남편이다. 사진첩에 있는 몇몇 사진을 보아야 기억이 나는 나와는 달리 일본의 맛을 즐기고 있었다. 남편에게 일본의 맛은 선명한 기억이다. 여행의 기억이 저마다 다르듯, 맛을 기억해 내는 방법도 저마다 다르다.
남편의 기억을 기록할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맛을 소개하는 글도 아닌데 그렇게 까지 할 필요까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무게가 실렸다. 기울어진 생각은 서툴고 애매모호한 일본의 맛을 기록한다.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 맛과 사진이 없어 기억해 내지 못한 맛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