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일하는 사람

by 새나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자. 성공이든 행복이든, 그것을 향해 한걸음 내딛을 수 있는 때는 바로 지금뿐이다.

우리는 내일을 앞당겨 쓸 수도, 어제를 다시 꺼내 쓸 수도 없다. 오직 이 순간에 몰두해야 한다.


- 선물 책 내용 중에서 -




쿠션 두 개를 베개 삼아 한 손에는 리모컨을 들고 우리 집에서 tv보기 좋은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믹스커피를 구매할 때 받은 부드러운 극세사 담요를 덮고 나면 한두 시간은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이는 건 왼손에 들린 리모컨을 누르기 위한 엄지손가락이 전부이다.

tv보기 좋은 명당자리에 한두 번 누워 본 사람이라면 그 편안함에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이 돼버린다.


주부의 삶은 365일 꺼지지 않는 간판의 불처럼 쉼 없이 계속된다.

가족들의 건강한 식단을 위해 매일 요리를 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매일 쓸고 닦고를 반복한다.

안에 일을 하는 사람은 휴일 없이 365일 연중무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반면에 밖에 일을 하는 사람은 일주일 중 5일 일하고 2일의 휴식이 주어진다.

밖에 일하는 사람에게 2일의 휴식 중 하루만이라도 나눠 쓰자고 말이라도 꺼낼 때면 그 휴일을 지키고자 온몸으로 방어태세에 들어간다.


밖에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아냐는 둥

일주일 동안 일만 하는데 휴일은 봐달라는 둥

본인 휴식은 정당하게 일해 받은 권리이기에 방해하지 마! 굵은 선을 딱 그어 함께 휴식 시간을 공유하고자 했던 나에게 넘어오지 못하게 한다.

치사하지만 인정해주기로 했다.

10년 가까이 휴식시간을 서로 공유 좀 하자고 외쳤지만 타협이 되지 않는 것은 한쪽에서 전혀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판단이 되었다.


tv보기 좋은 명당자리는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주부의 삶에 생명수와 같은 존재이다.

그 자리에 누워 두 다리와 두 팔을 쫙펴 기지개를 쭉 켜고 나면 안에 일로 고단했던 피로가 사라진다.

운이 좋은 날은 tv를 보다가 스르르 낮잠에 빠져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도 있다.


꿀맛 같은 낮잠도 잠시 아이들의 배꼽시계가 울려되기 시작했다.

밥을 달라고 소리치는 아이들을 향해 "엄마 10분만 더 잘게 10분만..."이라고 얘기를 해보지만 소용없다.

내가 누워있는 소파 아래 두 녀석이 앉아 엄마 일어나라는 시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점심에는 흰쌀밥이 아닌 샌드위치와 딸기가 먹고 싶다는 두 녀석들을 위해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마스크를 쓰고 동네 슈퍼에 딸기를 사러 갔다.

외출 시 마스크가 필수가 돼버린 요즘 마스크를 쓰면서 좋은 점 한 가지는 화장을 하지 않고 외출을 할 수 있다

슈퍼에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두 눈만 내놓고 모두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어디가?"

멀리서 마스크를 쓰고 걸어오던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긴가민가 하다.

며칠 전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적도 있었기에 마스크를 쓰고 인사를 할 때는 조심스럽다.


나에게 말을 걸며 멀리서 걸어온 사람은 놀이터에서 만난 아는 엄마였다.

한 달 동안 아이들과 집에서 지내는 이야기와 언제쯤 이 상황이 끝날지에 대한 속풀이를 한껏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5분이면 갔다 올 거리를 30분이 넘게 오지 않고 있던 나를 애타게 기다렸던 아이들은 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엄마 왜 이제와?"라는 말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 했던 샌드위치와 딸기를 씻어 준비한 그릇에 담았다.

꿀맛 같은 낮잠을 깨우던 아이들에게 10분 만을 외치는 나의 말이 철저히 무시당하면서 서운한 감정이 있었다. 하지만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입에 넣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끼니는 거르지 말고..." 어릴 적부터 친정엄마가 자주 나에게 해주던 말이다.

제때 끼니만 잘 챙겨 먹어도 각종 영양제 섭취가 필요 없을 만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친정엄마의 철학이 담겨 있는 말이다.


매번 삼시 세 끼를 준비하면서 휴식도 없는 안에 일을 하는 주부의 삶에 과부하가 생겼다.

밖에 일하는 남편에게 역할분담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상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나에게도 휴식을 달라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팻말을 들고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안에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빈둥대는 삶처럼 비쳐 질지 모르지만 우리 주부의 삶은 밖의 일 만큼이나 치열하게 바삐 움직이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불이 꺼지지 않는 간판처럼 쉼이 없는 주부의 삶은 시작된다.

나의 피곤함이 쌓일수록 우리 집 tv명당자리를 찾는 횟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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