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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본 듯한 문장들 사이에서

by 새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일어나는 날도 있다. 아주 가끔은 누가 내 손을 붙잡고 써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술술 써지는 날도 있다. 대부분의 날은 전자에 가깝다. 썼다가 지우고, 지웠다가 다시 쓰고 그런 내게 신춘문예는 하나의 등대 같은 것이었다. 뿌연 안갯속에서 흔들리는 나의 향해에 어렴풋한 방향을 가리켜주는 존재.


그래서 나는 그 등대를 향해 글을 썼다. 당선된 작품들을 모아 인쇄하고, 밑줄을 긋고, 때로는 필사도 했다. 어느 문장은 세 번이고, 다섯 번이고 따라 썼다. 그들의 문장을 따라 쓰다 보면, 어쩐지 나도 그들처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제된 언어, 물 흐르듯 이어지는 전개, 묘사와 철학, 그 모든 것이 내가 갖추고 싶었던 글의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잘 써졌다. 놀라울 만큼 문장이 유려하게 흘렸다. 이 문장은 여기에, 저 문장은 저기에, 퍼즐 조각처럼 딱 들어맞았다. 한 문단이 완성될 때마다 스스로 감탄했다.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나도 언젠가는 그들 옆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잘 써진 글임에도, 어쩐지 낯설었다. 분명히 내가 쓴 글인데, 내 글 같지가 않았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 익숙한 리듬이 튀어나오고, 표현 하나하나가 낯익었다. 어디서 본 듯한 문장들이었다. 그 문장들은 내가 만든 게 아니었다. 그저 기억 속 어딘가에 박혀 있던, 누군가의 훌륭한 문장이었다. 나는 구멍 난 내 글 위에 그들의 문장을 끼워 넣고 있었다. 마치 잘 짜인 수입 원단 위에 내 이름을 덧대는 기분이었다.


그 글은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심사위원의 평은 없었지만, 결과가 이미 많은 것을 말해 주었다. 그 글은 '잘 쓴 글'이 아니었다. 매끄럽고, 감정도 있고, 완성도도 나쁘지 않았지만, 나의 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쁜 옷이라도 내 치수가 아니면 어색하듯, 그 글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어깨는 들뜨고, 소매는 길었다. 나는 그 글 속에서 불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잘 쓰인 글의 문장들을 훔쳐 내 글에 보기 좋게 끼워 넣었다. 티 나지 않게 잘 다듬어 넣었던 그 글의 주인은 누구 일까. 그 문장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 지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나는 선뜻 말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치욕적인 감정마저 들었다.

남의 문장을 훔쳐 글을 완성 한들, 그 글이 내 것은 아니다. 당선에 눈이 멀었던 나다. 그들의 문장을 참고할 수는 있으나 그대로 쓰는 것은 표절이다. 난 문장을 훔친 도둑이었다.


나는 방향을 바꾸어 내 글을 쓰기로 했다. 타인의 문장을 쫒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조심스러웠다. 감정을 너무 많이 드러내면 유치해 보일까 걱정되었고, 비문이 많은 문장들은 나의 부족함을 드러낼까 두려웠다. 하지만 쓰기로 했다. 더듬더듬, 단어를 고르고, 말의 순서를 바꾸고, 지나치게 문학적인 표현도 덜어냈다. 어디서 본듯한 문장이 보이면 다른 문장으로 바꿨다. 무의식 중에 떠오르는 익숙한 문장은 최대한 쓰지 않고 신선한 문장들을 선택했다. 나의 언어로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를 키우며 느낀 막막함, 병원 진료실에서 들은 한 마디에 무너졌던 날, 거울 속 낯선 얼굴을 보며 눈물이 났던 아침, 이 모든 것이 내 글이 되었다.


내 글이 당선되었다. 신춘문예는 아니었지만 여러 글 공모전에서 내 글이 선택받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토록 흉내 내려했던 완벽한 문장들로는 이루지 못했던 일이다. 문맥은 다소 어설펐고, 글의 구조도 매끄럽지 못했지만 그 글에는 '나'가 있었다. 내 생각과 감정, 내 언어와 호흡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글은 내가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나는 내 글을 쓸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내가 겪은 고통, 기쁨, 실패, 희망, 그 모든 것을 글로 풀어낼 자격이 내게 있다. 나의 문장은 서툴러도, 그 문장에 담긴 온도는 분명 나의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문장을 따라 쓴다 해도, 그 안에 내가 없다면 그 글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잘 읽히는 글이 아니라, 마음에 스며드는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오늘도 쓴다. 문장을 고치고, 다시 쓰고, 때로는 모두 지워 버리거나 휴지통에 버린다. 하지만 한 가지는 잊지 않는다. 글에는 삶의 저작권이 있다. 글은 그 사람의 삶 자체다. 문장을 훔치는 일은 그들의 삶을 훔치는 일과 같다. 내 삶의 저작권이 나에게 있듯, 타인의 삶의 저작권을 탐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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