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걸어온 시간 그게 나다

by 새나

애써 강해지려다 보면 신발 밑창처럼 마음이 닳아간다. 길 위에서 삶을 견뎌야 하기에 단단해지려 하지만, 결국 무뎌진 감각이 나를 삭막하게 만든다. 이래도 어렵고 저래도 힘들다. 하소연도 어렵다.


새 신발을 신던 날이 떠오른다. 바닥이 푹신하고 발을 감싸는 촉감이 부드럽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세상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걸을수록 신발은 닳고, 빛이 바래며, 작은 흠집이 생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발에 맞게 길들여지는 대신, 점점 낡아가는 신발을 보며 나도 함께 닳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집안일을 했다. 패기 넘치던 신혼에는 뭐든 잘 해냈다. 참을성도 있었다. 잘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믿고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고, 때로는 차가운 눈빛과 말투에 마음을 자주 할퀴었다. 계속되는 충돌과 삐걱거림에 마음이 자주 시렸다. 그럼에도 다시 신발 끈을 조이고 한걸음 내디뎠다. 신발이 걷는 것처럼. 나도 멈추지 않았다.


길 위의 신발은 늘 시험받는다. 거친 길을 걸을 때마다 흠집이 나고, 비를 맞으면 축축해진다. 하지만 신발은 다시 발과 호흡을 맞춰 걸어야 했다. 멈추면 신발장 구석에서 쓰임을 다한 채 잊혀 간다. 비를 맞고 햇볕을 말리며 다시 걸을 준비를 한다. 일상도 마찬가지였다. 힘든 시간을 지나며 때로는 멈추고 싶었지만, 다시 길을 나섰다.

신발이 해진다는 것은 걸어온 시간의 증거였다.

세월이 흘러, 내 얼굴에도 주름이 새겨졌다. 예전처럼 기세 좋게 뛰지는 못해도,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었고, 남편의 시선과 말투에 익숙해졌다. 원래 다 이렇게 사는 거라 스스로 위안의 말을 건넨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 내 걸음이 작은 발자국이라도 남기를 바란다. 신발이 길을 걸으며 남긴 흔적처럼, 내 삶도 누군가의 길에 함께 걷고 있다는 작은 표식이 되었기를.


어느새 저녁이 되고, 불 켜진 집으로 돌아온다. 낡은 신발을 벗어두고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젓가락을 부딪치며 짧은 대화가 오간다.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내는 자리. 서로가 얼굴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유일한 우리의 시간이다.


현관에 벗어 놓은 신발들이 허기진 숨을 내 쉬듯 우리도 하루의 고단함을 한숨으로 밀어낸다.


버거운 일상을 벗어던지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열심히 달려온 시간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 누군가의 한마디 위로가 다시 신발 끈을 조일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이기를 바란다. 집에서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밖에서 신발 끈을 조이는 방법을 묻는다. 달콤한 말로 포장한 가벼움에 홀리듯 따라가다 보면 신고 있던 신발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가끔은 신발을 벗고 쉬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충분하지 않을까. 가끔은 해답 없이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인생에 답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듯. 그것이 내 삶이다. 신발이 걸어온 길에 흔적이 남듯, 나의 시간들이 새겨진다. 그리고 내가 있다. 그게 나이다.


내일도 다시 신발 끈을 조이며 걸어간다. 신발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내 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