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지 같은 날

by 새나


남편이 카톡으로 사진 한 장을 보내 줬다.

"우리는 이거 받을 수 있나?"

긴급 생계자금 지원대상 및 금액에 대한 안내사진 3장을 보내주면서 나한테 물었다.

"당연히 우리는 받을 수 있는 거 아니야?"

한 달이 넘도록 남편 가게는 영업을 하지 못했고 또다시 영업을 하지 말라는 안내장을 구청으로부터 받았다.


남편은 구청 공무원으로부터 온 전화에 대고 하소연을 하듯 말들을 쏟아 냈지만 들려온 답변은 "저희도 내려온 지침대로 안내하는 거라서요 죄송합니다" 지침대로 따라 주시고 혹시라도 안내장의 내용대로 따르지 않다가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손해배상 청구 등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한 달 동안 수익은 0원 지출은 수입과는 상관없이 고정적으로 나가야 하는 임차료, 전기세, 직원 월급, 각종 공과금 등으로 몇백만 원

우리 집 생활비까지 생각하면 한 달 지출되는 금액은 더 늘어나게 된다.

한두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이 상황이 점점 장기화되어 갈 것 같은 불길한 느낌에 남편과 나는 점점 불안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긴급 생계자금은 우리와 같은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몸에 와 닿지 않는 혜택이다.

일반적으로 집이 있고 자동차가 있는 자영업자라면 지역가입자 의료보험이 16만 원을 훌쩍 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지원제외 대상중에는 기준 중위소득 100% 초과 건강보험료 납부자가 있다.

영업장의 매출액과는 상관없이 지역가입자는 은행 대출이 50%인 집, 카드대출로 구입한 자동차 등 온전히 나의 재산이 아닌 것들에 대해 재산으로 책정해서 보험료가 산정된다.

중위소득 100% 이하가 되려면 4인 가족 기준 한 달 건보료가 약 16만 원 이하여지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당장 내달부터 직원들 월급, 임대료 걱정에 대출을 알아보려 다녔고 그마저도 순위에서 밀려 대출이 나올지 불명확하다고 한다.

한두 달은 버틸 여력이 되지만 그다음은 앞이 캄캄한 안갯속처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가 없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스트레스 지수가 한계치를 도달하고 있다.

남편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들은 뾰족한 송곳처럼 날카롭다.

아이들은 사소한 것에 화를 내고 싸우고 울어 댄다.

둘째 아들은 베란다를 통해서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만 들려도 후닥닥 베란다로 달려가 또래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금 현실에 너무 화가 나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이라도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집안에만 있던 우리 네 가족은 몸도 마음도 아파가고 있다.


남편의 날카로운 말들은 나를 향했고 그 말들로 인해 상처 받은 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힘든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가는 일인데 큰소리로 아이들에게 고함을 지르면서 힘없는 아이들을 나의 감정 받이로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라고 이성적인 사람이 되었을 때는 이미 아이들의 눈에는 속상한 마음을 알려주듯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울고 있는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눈과 귀를 닫았다.


침대에 누워 이 그지 같은 감정들과 시간이 지나가기를 원했다.

잠을 자고 나면 요동쳤던 감정들이 잠시 멈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남편의 송곳 같은 말들, 아이들의 재잘대던 소리에서 잠시 벗어났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네 가족

그지 같은 시간 속에서 우리 네 가족은 서로의 감정 받이가 되어주면서 각자의 유리벽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더 이상 나한테 다가오지 마'

'더 이상 나한테 올 수 없어! 딱 거기까지야!'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있는 게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오늘 같은 그지 같은 날은 더 이상 오지 않기를 바란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던 하루는 캄캄한 밤이 되고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이 밝아 오면서 과거의 시간에 꽁꽁 묻어 버렸다.


"인정해줘! 신경 써줘!"라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지 말고 우선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면 어느새 안심이 되고, 타인에게 기대하는 일도 그만둘 수 있습니다.


- 나만 나쁜 엄마인가 봐 책 내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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