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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문 Jun 03. 2019

그에 대한 애칭을 거부한다

‘사랑한다’면 ‘뵹아리’라는 말을 그만 쓰라

프로듀스 시즌2를 봤을 때, 나는 어느 한 인물에 그대로 입덕 하고 말았다. 당시에는 큐브 연습생이었던 라이관린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에 대한 여러 수식어가 있지만 아무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식어는 ‘대만의 왕자’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인다. (물론 왕정체제에 대한 나의 입장은 별론이다.) 단순히 그것 때문에 그에게 반하는 것은 아니다. 시련이 와도 굳건한 정신력, 남을 배려하는 성숙한 발언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자연스럽게 ‘나는 라이관린의 팬’이라고 자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행복한 덕후 생활을 하던 중 나는 라이관린 팬덤 일각에서 ‘뵹아리’라는 말을 그의 별명으로 쓴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처음에 같이 나온 유선호 씨와 같이 ‘병아리 연습생이다’라는 말에서 따온 것처럼 보였는데 굳이 ‘뵹아리’라고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찾아보니 대만 출신인 그가 한국어를 발음하는 데 있어 ‘병아리’를 ‘뵹아리’라고 하는 것이 귀여움의 포인트라고 하여 애칭으로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아 그렇구나’라고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칭챙총’이라는 말에 대해서 아는가? 서양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 말이 그렇게 들린다고 해서 쓰는 조롱의 단어다. 지금은 동아시아권 전체에 대한 멸칭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신이 이 말을 해외에서 들었고 항의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 말을 사용한 서양인이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네 말투가 그렇게 들려서 그냥 애칭으로 쓴 것뿐이야. 게다가 알잖아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거?”

실제로 그 서양인은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칭챙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 전에는 그 어떤 인종 차별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과민했네’라고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상대의 발음을 가지고 놀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항의할 것인가? 대부분의 동양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아무리 그 외국인이 좋다고 해도, 악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한 어눌한 발음에 대해 희화화를 하거나 애칭을 붙이는 행위는 좋지 않다. 차별은 그렇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좋아해서 하는 것인데’ 라거나 ‘좋아하는데 무슨 차별인가’라고 말하는 순간 차별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단지 좋아하는 감정만 있다고 모든 것이 상대에게 호의가 되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그럼에도 상대가 불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결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기분에 맞춰 타인을 변형시키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일 뿐이다. 더욱이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거나, 그렇게 될 씨앗을 사회에 대놓고 뿌리는 선구자적 행동을 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라이관린에 대한 애칭으로 ‘뵹아리’를 거부한다. 나는 라이관린을 사랑하기에, 그의 팬임을 자처하기에, 그가 한국에서 어떤 단 하나의 부분에서라도 차별을 받지 않기를 원한다. 그것이 예민하다고 하면 그렇게 받아들이겠다. 차별에 무감각한 것보다는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잘 쓰는 것이 더 좋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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