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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문 Jul 28. 2019

쓸모없는 에스페란토

그럼에도 왜 나는 에스페란티스토인가

초보 에스페란티스토들1)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의 질문에 직면해야 한다. “그게 뭐야?” 그리고 열심히 자멘호프 박사2)와 인류인주의3) 그리고 평화를 갈망하는 에스페란티스토에 관해서 설명한 그들에게는 다시 가혹한 질문이 이어진다. “그런 거 배워서 뭐하게?” 정말이지 핵심을 찌르는 이 질문에 에스페란티스토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에스페란토가 처음 생길 때부터 그랬지만, 그것을 배워서 뭐하겠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대답을 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19세기, 자멘호프 박사가 살아있을 때였으면 차라리 대답하기 수월했을지 모른다. 그때는 에스페란토 운동이 경이롭게 확산하고 있었고, 국제연맹에서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우호적인 결의문을 지속해서 통과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언어 제국주의가 너무 명확하게 보여서 식민지국들의 민족어가 처참히 파괴되고 있었을 때 에스페란토는 그것을 극복하는데 유효한 해결책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에스페란토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그것이 국제공용어로서 인정받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에스페란토는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활력을 많이 잃어버렸다. 사방에서 에스페란토를 경계하는 사람들은 에스페란티스토들에게 총구를 향했고, 결국 세상에 초록빛 별4)의 이념을 품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탄압은 사라지고 운동은 다시 기반을 마련했지만, 이전과 같은 위용을 회복하기는 어려웠고 국제공용어는 확고하게 강대국의 언어인 영어 등이 그 자리를 꿰차버렸다.

이제 그렇기 때문에 에스페란토는 누군가의 조소처럼 그저 몇몇 몽상가들의 장난질로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200만이라는 구사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 정도의 수로 누가 에스페란토를 국제어라고 감히 칭할 수 있겠는가? 7500만이 사용하는 한국어도 인구수보다 위상이 낮다고 지적받는 시대에 에스페란토를 국제어라고 칭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아닌가? 그래서 에스페란티스토들이 직면하는 질문인 “그런 거 배워서 뭐하게?”는 이런 현실을 짧지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에스페란토는 쓸데없다. 에스페란티스토들이 다른 언어를 배우는데 가교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해도, 그것은 미미해서 그냥 그 언어를 처음부터 새로 배우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국제어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에스페란토가 아니라 영어나 중국어 등을 배우는 것에 할애된다. 더욱이 실용성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에는 길거리에서 ‘Hi’라고 외치는 것이 ‘Saluton’이라고 외치는 것보다 알아듣는 사람이 더 많다. 후자를 알아듣는다면 에스페란티스토들은 그에게 다가가서 서로의 동지애를 확인하는 정도의 기쁨을 누릴 정도로 벅찬 감동에 차오를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소수고, 쓸모없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에스페란티스토가 되기로 했는가? 간단하다. 여전히 에스페란티스토들의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은 유효하고, 그것이 에스페란토에 대한 비웃음보다 훨씬 세상을 더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의 현실을 생각해보자, 한국인들은 토익과 같은 시험에 매달려 자신의 인생을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단순히 강대국의 언어이고,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기 때문에 이리도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한국인들의 선택이었다면 이런 현실을 참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그것을 선택했던가? 한국인들은 영어를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요받았다.

세계 질서에서 미국이 가장 강하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에 잠식당해야 하는 현실에 있는 한국에서 에스페란토는 그것을 깨부수자고 말하는 충분한 힘이 있다. 그것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일지라도, 이념은 때로는 현실을 뛰어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 에스페란토는 그런 이념 아래에서 좀 더 쉽고 평등한 언어로 대화하는 세상을 꿈꾼다. 경제의 민주화를 이야기하는 시대에, 언어의 민주화가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는 비현실적인 이상을 현실에서 구상시키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도 거리에서 그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차별금지법을 외치는 퀴어들,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노동자들, 권리 획득을 위해 분연히 일어난 청소년들 등등. 그들의 이상도 누군가는 비웃음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지만, 결국 거리에서 그들은 점점 승전보를 올리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아 하나의 세력으로 성장했다. 에스페란티스토들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들은 비록 현실에 대해 이성으로 비관할지라도 의지로 낙관하며 오늘도 에스페란토를 배운다. 당신도 조금이라도 이것에 동의한다면 오늘은 좀 외쳐보는 것은 어떤가? Saluton? (‘살루톤’이라 읽으며 에스페란토로 안녕하세요?라는 뜻)


1) 에스페란티스토(Esperantisto) : 에스페란토 사용자를 뜻하는 말.
2) 자멘호프 : 에스페란토 창안자
3) 인류인주의 : 중립적인 인간의 토대 위에 상호 간의 형제애, 평등, 정의의 기초 위에 언어와 종교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하도록 하는 자멘호프의 에스페란토 필요성에 대한 이론
4) 초록빛 별 : 에스페란토의 상징인 녹색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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