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르는 여자들

모르는 여자들에게 위로받았던 따듯했던 순간

by 함지연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이사를 온 후, 몇 차례의 혼자 여행 경험이 있다. 하고 싶은 일 중에 혼자 떠나는 여행도 있었다. 아직 해외는 두렵지만 국내는 씩씩하게 다닐 수 있다. 혼자가 되어서도 혼자 잘 노는 내가 대견하다. 꽤 마음에 든다. 지금처럼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마음에 들었던 적이 언제였었나. 늘 재능이 부족하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엄격하게 몰아붙였지. 남을 미워하는 것보다 나를 미워하는 것이 그때는 더 쉬웠다.


이번에 다녀온 여행은 관광 가이드의 인솔하에 정해진 일정을 다니는 패키지 여행이었다. 지역의 관광 보조금 지원으로 가격이 저렴한 대신, 낯선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상품이었다. 패키지 여행을 혼자 다녀오겠다고 신청하다니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물론 여성 전용 여행이라는 상품의 특성 때문에 갖게 된 안도감도 있었다. 아무리 혼자인 채로도 씩씩하다지만, 다정한 커플 사이에서 ‘나는 솔로’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건 아직 못하겠다.


모이는 장소에 도착하니 함께 떠날 인원은 서른 명 남짓. 서울에서 관광버스를 이용해 도착한 후 지역의 유적지와 관광지를 돌고, 체험도 한다. 세 번의 식사가 제공되었는데 예상보다 잘 차려져서 맛있게 먹었다. 버스가 서울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다 휴게소에 정차하는 동안, 대체적으로는 동행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대의 모녀가 오기도 했고, 서로 존칭을 쓰는 직장 동료 사이도 있었고 가장 많은 경우는 역시나 친구였다. 가방에서 간식을 꺼내 나눠 먹으며 낮은 목소리로 쉴새 없이 웃고 떠들던 여자들.


내게는 처음이기도 했던 전라남도 고창.

혼자 오셨어요?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 버스를 기다리며 서성이는 내게 누군가 다가와 물었다. 물론 나도 이미 그녀가 나처럼 혼자 여행객인 것을 눈치챘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나처럼 혼자 우동을 먹던, 나와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여자. 패키지 여행에 혼자 온 것은 처음이라 하니 그녀는 벌써 몇 번째 다녔다고 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기 위해 시간을 맞추고 여행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번거롭고 어려워서 혼자 다니기 시작했는데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경험자로서의 조언을 듣다가 남은 일정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래서 얼떨결에 내게 짝꿍이 생겼다. 아무리 혼자가 좋다고 해도 짝을 이루어야 하는 일들도 더러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식당이나 카페에 갔을 때. 아는 사람들끼리 온 자리에 혼자 껴 있을 때 느낄 뻘쭘함은 상상만으로도 불편하다.


어릴 때, 내 어머니와 어머니 또래의 여자들이, 중년과 노년의 여자들이, 모르는 여자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처음 보는 여자를 마치 오래 사귄 친구인 듯 허물없이 대하는 것을 기이하게 생각했던 일이 있다. 때로는 집안의 내밀한 이야기들까지 꺼내놓는 그녀들을 가볍다고 생각했다. 결코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시장 좌판의 여자들에게 털어놓는 어머니에게 화를 낸 적도 있다.


이제 내가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었고, 처음 만난 여자와 나란히 걷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또는 손을 잡고 함께 찍은 사진을 남기고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녹차밭 사이에 같이 쪼그려 앉아서 희고 작은 녹차 꽃을 신기해하며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혼자여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불편한 점이 있었고, 다정한 사람들을 보니 나도 친구와 올걸 하고 후회도 했더랬다. 그렇다고 낯가림 심한 내가 모르는 사람과 함께 팀을 이루는 것 역시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예상외로 편했다. 어쩌면 그건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가진 비슷한 경험들과 그로 인한 공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에서 최대의 난코스는 잠을 잘 숙소를 배정받는 일이었다. 다섯 명씩 한 방을 썼는데, 동행이 있는 이들은 당연히 같은 방을 배정받고, 빈 자리에 혼자 여행객이 각각 배정되었다. 친구 사이이거나 동료 사이에 끼는 것도 어색한데 나는 하필 3대가 함께 온 이들과 한 방에 묵게 되었다. 할머니와 딸과 손녀딸 두 명.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다락방이 있어서 다락방을 내가 쓰겠다고 자청했다. 가족들과 나란히 누워 자는 것만은 정말 피하고 싶은 그림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크게 불편을 느낀 순간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모르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화장실을 공유하고 나란히 누워 잤던 경험은 전혀 없다.


그날 밤, 복도에서 만난 나의 1일 친구는 나의 민망하고 불편한 상황을 이해했고 공동 주방에서 술을 마시며 놀다가 가족들이 잠들고 나서 들어가라고 했다. 초중고를 함께 나오고 결혼 후에도 한 동네에 살고 있다는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이 함께 자리해서 모두 네 명이 식탁 앞에 모였다. 농촌체험형 숙소의 주인은 직접 담근 술을 꺼내왔고 우린 돈을 갹출해서 술값을 냈다. 붉고 달고 독한 복분자술 2리터들이 한 병을 나눠마시며 우리는 취해갔고 취한 김에 자신의 속엣말을 꺼내놓았다.


누구는 암환자라고 고백했고 누구는 시모와의 골깊은 갈등을 얘기했고 누구는 자녀가 장성한 후, 크게 느껴지는 허전함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 중 한 명은 간호사였고 누군가의 탈모 고민에 전문가다운 조언을 하기도 했다. 통성명을 하고 가족 관계와 사는 곳과 직업을 말하고 코미디언이 꿈이었다는 누군가의 우스갯소리에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나이가 들면 스스럼이 없어지는 것이 정말일까. 어떠한 불행도 별거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걸까. 남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부끄러움과 창피함 때문에 감추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혀끝에 달아서 평소의 주량보다 더 마셨고 금방 취기가 오르는 독한 술 때문이었을까


취한 나는 그 자리에서 나는 오랜 친구들에게조차 털어놓기까지 오래 걸렸던 나의 이혼 이야기를 했다. 왜 이혼해야 했는지, 어떤 것들이 견디기 힘들었는지, 지금 이혼 소송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까지 전부 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동정받고 싶지 않았다. 나를 가엽게 여기는 것도 바보 취급하는 것도 싫었다. 누가 나의 불행을 보며 자신의 행복에 안도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털어놓지 못했다. 속에서 곪고 썩고 악취가 날 때까지.


막상 털어놓자 무거운 이야기들은 실은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살면서 겪는 불행이기는 하지만 결코 가장 큰 것은 아니었다. 처음 맞닥뜨린 순간엔 거대하게 느껴지던 불행도 점차 그 크기가 작아지고 가벼워졌다. 그저 지나가는 일이었고 조금 오래 걸리는 일이었고 행복의 모양이 여러 가지이듯 서로 다른 불행의 한 가지일 뿐이었다. 그건 소리 내어 말한 내게도 그랬고 내가 말하는 동안, 조용히 귀 기울여 들어준 식탁 앞에 모인 여자들에게도 그러했다. 그녀들의 불행도 지나갈 것이고 내 불행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지나갈 것이다.


우리는 주방에서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이어갔고 취해서 숙소로 돌아갔다. 그 밤, 하늘에는 쏟아질 듯 많은 별이 있었고 유성운도 보였다는데 보지 못했다. 다음날 8시에 기상해서 일정대로 몇 군데의 관광지를 들렀고 남도의 판소리 체험을 했고 늦은 오후,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발했다. 중간에 몇 번 버스는 정차했고 사람들은 차례차례 내리기 시작했다. 밤이 늦도록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들도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여행을 다니며 나의 1박 2일 친구에게 스마트폰 속 사진첩에 있는 사진 몇 장을 전송했었다.

일몰의 바닷가를 걷는 그녀를 역광으로 찍은 사진이다. 마음에 들었는지 내가 찍어준 사진이 한동안 그녀의 카카오톡 프사로 설정되어 있었다.

겨울이 지나는 동안, 전화번호는 알지만 서로 연락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연락처를 삭제했고 우리는 다시 모르는 여자들이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