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
그 집을 떠나는 것을 주저했던 이유 중 하나는 화분들 때문이기도 했다. 한때 나의 화분은 80여 개가 넘었다. 화분이 늘어나는 것이 그저 예쁘고 좋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위로를 주던 화분이 책임져야 할 대상처럼 버겁게 느껴지면서 80개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처음엔 분명 한 개였을 화분은 점점 많아졌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종로나 양재 꽃시장에 가서 사 온 구근과 모종과 꽃들. 크고 작은 화분이 옥상과 복도와 베란다에 가득했다. 누군가 화분을 주겠다고 하면 신나게 받아왔다. 그 집은 볕과 바람이 잘 드나드는 편이어서 식물들이 잘 자랐다. 대부분은 혼자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옮길 수 있지만, 옥상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물탱크를 며칠에 거쳐 직접 톱으로 자르고 흙을 채워 심은 대추나무와 살구나무는 옮길 수조차 없다. 살구나무로 말할 것 같으면 할머니의 오래된 집 앞마당에 있던 나무에서 따온 살구를 먹고 난 후, 화분에 버린 살구씨 하나가 몇 년에 거쳐 발아하고 잎이 나오고 줄기가 단단해지며 드디어 나무가 되었다는 신기한 이야기.
오랜 시간, 나는 무언가를 늘리면서 살았다. 할인행사를 할 때마다 구매한 36롤 두루마리 휴지들, 몇 년은 너끈히 쓸 수 있을 만큼의 물티슈, 홈쇼핑을 보다 충동적으로 주문한 액체 세제를 빈틈없이 올리고 쌓고, 아이들이 어릴 때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그린 그림과 만들기, 연필심을 꾹꾹 눌러쓴 일기장까지 다 이고 지고 살았다. 정작 일기장의 주인들은 제발 버리라고 성화였다. 정리해야지 마음먹었다가 손대지 못하고 포기하기를 여러 차례. 그 집에 있는 모든 것들, 나의 돌봄이 필요한 동거인들, 온갖 사물과 수십 개의 식물까지 내 머리와 어깨 위에 전부 쌓은 듯 무게가 느껴졌다. 목과 어깨의 통증이 계속되었고, 편두통에 시달렸다.
이사를 한다면 공들여 키운 화분들은 어쩌나, 화분은 겹겹이 쌓아 실을 수 없으니 이삿짐 트럭을 추가로 불러야 하나. 화분은 그렇더라도 대추나무와 살구나무는 또 어쩌나. 쏟은 애정이 얼마인데. 때로는 자식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위안을 주던, 때로는 나의 혼잣말을 고요히 들어주던, 이제 제법 자라 나 하나쯤은 볕을 피할 수 있도록 그늘을 내어주던 푸른 잎사귀들은 어쩌나. 아니다, 화분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다. 그저 떠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떠날 수 없는 이유를 자꾸만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망설이기만 했던 긴 시간이 무색하게 이사는 빠르게 결정했다. 이사 날짜가 촉박해서 30년동안 미루었던 버리기를 과감하게 했던 시기를 보냈다. 어깨에 이고 지고 있던 짐들이 남길 것과 가져갈 것, 버릴 것으로 분리되어 버려졌다. 때로는 입구를 묶어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다시 가져와 꺼냈다 도로 넣기를 반복했다. 카메라로 찍어 인화했던 사진들을 보관한 수십 권의 사진첩들도 이제야 정리됐다. 아끼는 사진은 남기고 대부분은 버렸다. 펼쳐볼 일도 없던 결혼식 당시의 사진첩은 한 장 한 장 가위로 오려서 버렸다. 짙은 화장을 한 내 얼굴도, 지금보다 젊고 건강했던 부모의 모습도, 여전히 내 곁에 있거나 이제는 멀어져간 친구들의 얼굴도 잘게 조각났다. 미운 감정만 남은 사람들과 어색하게 웃으며 찍은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며 괴로웠고 버리며 또 괴로웠다.
화분들은 두고 가기로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줄 알았는데, 막상 마지막 밤, 잠을 잘 수 없었다. 불을 끄고 뒤척이다 일어나서 두고 떠날 것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벽과 문과 싱크대 선반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했다. 바가지에 물을 떠서 화분마다 듬뿍 주었다. 함께였던 나무와 꽃들에게 잘 있으라고 했다. 검었던 하늘은 서서히 옅어지며 밝아질 때까지 집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살구꽃은 보고 가겠지 했는데 못 보고 구절초와 들국화가 한창이던 10월, 그 집을 떠났다. 다툼과 언쟁, 갈등, 한숨과 긴장감이 언제라도 터질 듯 가득 찼던 공간을 떠나니 홀가분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슬펐다. 유행 지난 체리색 몰딩과 진득한 먼지가 두껍게 앉은 전등이 있는 구옥. 부식되고 낡고 고장 나서 손볼 곳이 많던 집, 이사 가는 친구들을 배웅할 때마다 다른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고 투정하던 딸이 나고 자란 공간.
이사를 하고 네 번째 계절을 맞이한다. 새로 이사를 할 집을 구할 때 필수조건이었던 것도 아닌데 지금 사는 동네에는 놀랍도록 많은 화분이 있다. 한 동짜리 아파트조차 없고 층이 제각각인 단독주택이 나란히 이어진 골목. 산책할 때마다 마당 안쪽의 나무들을 본다. 목련나무와 벚나무와 소나무도 있고, 감나무가 가장 많다. 어떤 골목에서는 집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느티나무를 발견하고 발을 멈춘다. 골목과 골목, 집과 집마다 화분이 있다. 달맞이꽃과 메발톱꽃, 금계국과 채송화가 심어진 화분들. 나는 화분을 두고 왔는데, 이곳에서 매일 화분들을 본다. 서늘한 나무 그늘 밑을 걷는다.
그럴 때마다 두고 온 화분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지금 살구꽃이 피었겠다. 봄이 시작되기도 전에 가장 먼저 서둘러 피던 꽃, 블랙베리의 꽃이 지고 까맣고 동그란 열매가 맺혔겠네. 흙 깊숙이 움츠리고 있던 둥근 알뿌리에서 나온 작약은 몇 송이나 피었을까. 우아하게 펼쳐진 짙은 분홍색. 지금쯤 대추나무 아래 그늘은 조금 더 넓어졌겠다.
화분들을 돌보던 한 시절이 가고 이제 화분이 없는 다른 시절이 시작된다. 여전히 소란한 날들을 보내며 때로는 웃고 가끔 크게 웃는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대체로 안녕하다. 두고 온 나의 화분들도 안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