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쯤 일이다.
재래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시장 초입에 있는 부산 어묵집에서 꼬치를 먹고 있었다. 종이컵에 국물을 따르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어쩐 일인지 내게 아는 체를 했다. 우리는 껄끄러운 사이였고, 그녀는 길에서 마주친 나를 모른 척하는 일이 많았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먼저 나를 불렀고 어묵을 하나 먹으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말했듯이 우리는 어색한 사이이다. 아니다. 불편하고 경계하고 비 호감인 사이가 정확하다. 굳이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 캐릭터였는데, 그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혼인제도 안에서 20여 년 간 법적인 가족 관계였던 손윗동서. 전 시가의 경직된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많은 시간을 내 원가족보다 더 자주 얼굴을 보고 살았지만 끝내는 악연으로 남은 사람이다.
아직 이혼 전이었다. 이혼으로 가는 과정은 요란하고 야단스러웠는데, 그 시기에 이 사람은 확실하게 내 편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굳이 나를 아는 체할 필요는 없었다. 나 역시 거절하고 내 갈길을 가면 됐는데 그녀 옆에 나란히 섰다. 어묵은 먹지 않았지만,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그때 나는 친하지도 않은 그녀에게 묻지도 않은 내 근황에 대해 떠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소설을 배우러 다니고 있어요.
신춘문예로 작가가 될 거예요.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당연히 잘 됐다거나 잘하라거나 잘 될 거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응원을 기대한 건 절대 아니다.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거나, 위로가 되어 주거나 의지가 되는 사이가 아니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내 욕망을 처음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소설’과 ‘신춘문예’라는 단어를 발설했지만, 나 자신도 놀랐다. 정말 가능한 일인가. 닿을 수 없는 커다란 꿈 아닌가.
이제 막 저녁 밥상 차리기 노동에서 해방되어 문화센터의 글쓰기 강좌에 등록하고 한 학기를 채 다니지 못한 시기였다. 그러니까 경력단절과 전업주부와 독박육아 20년을 거친 후, 습작 소설 한 편을 완성하고 현역으로 활동 중인 소설가이가도 했던 강사에게 첫 피드백을 받았던 때. 그런 자신이 기특했었나. 콕 찍어 신춘문예에 소설을 낼 거라는 말은 그날 처음 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글쓰기와 무관한 그녀는 당연히 내 말을 잊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날 나를 만났던 기억조차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그녀에게 발설한 나의 욕망은 진작에 그녀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억한다. 너무 생생해서 그날 그녀가 들고 있던 컵의 모양까지, 조금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옷차림새까지, 시장의 소음과 짜디짠 어묵 국물 냄새까지 전부 다 생각난다.
내 입에서 나온 욕망은 꼬깃꼬깃 접힌 채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것이었다. 그랬던 꿈이 환한 곳으로 나와서 내 귀로 다시 들어왔고 이번에는 머릿속에 박혔다.
그날 이후, 몇 편의 습작을 더 완성했고, 그중 한 편을 퇴고해서 신문사에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 춘천으로 내가 쓴 소설을 여행 가라고 보냈다.
우체국에서 등기를 보내며 '잘 가'라고 배웅했었다.
말은 씨가 된다. 그게 정말이라고? 그런데 정말이더라. 어떤 간절한 바람은 마음속에 있을 때가 아니라, 말이 되거나 글이 되었을 때 힘이 생기도 단단해지더라.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나를 나답게 하고 나를 꽤 괜찮은 사람이게 하는 내 꿈을, 내가 간절히 바라는 욕망을 거듭 말하고 거듭 글로 쓸 것이다.
나는 오로라를 보러 갈 거야.
나는 소설을 쓸 거야.
아들은 자립해서 서툴더라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거야.
빗속에서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거야.
마침내 나는 명랑하고 씩씩한 할머니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