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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콩 Sep 19. 2020

6만 시간의 육아

찐 고농축 육아가 나에게 준 것

나는 7살, 5살, 3살 딸 셋을 둔 다둥이 엄마다. 다른 이들이 놀라워하는 점은 결혼 전부터 아이 셋을 계획했다는 사실. 첫째가 3살이 되던 해 7월, 아주 더운 한 여름에 나는 둘째를 낳았다. 삼복더위를 뚫고 태어난 우리의 둘째. 역아였던 첫째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제왕절개를 해야 했다. 나는 내가 수술을 해서 아기를 낳게 될 줄은 몰랐다.



만삭 때 열심히 출산 후기들을 정독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가진통은 무엇이고, 진진통, 무통주사 등은 무엇인가. 나에겐 조금 특이한 욕심이 있다. 애 욕심, 자연 분만 욕심, 모유 욕심. 그래서 나는 둘째 때는 브이백에 도전하여 성공했다. (브이백이란 첫 아이를 제왕 절개한 산모가 두 번째에 자연 분만을 시도해 보는 경우를 말한다.)




조리원에서 2주, 친정에서 2주 간의 몸조리를 마치고 집으로 오니 이제 우리끼리 헤쳐 나가야 하는 일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두려움도 컸지만 곤히 함께 잠든 두 아이를 바라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둘째의 탄생은 첫째에게 '남편에게 첩이 생기는 일'만큼의 충격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첫째에게 최대한 맞춰줬다.



친정에서 몸조리 기간 동안 역시나 아이에게 퇴행 현상이 잠시 왔다. 자기도 젖병에 우유를 달라, 엄마 쮸쮸를 자기도 먹겠다, 심지어 아기의 속싸개까지 둘둘 말고 누워 있기도 했다. 시위 아닌 시위를 받으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남편에게 첩이 생긴다면? 나는 더 하면 더 했겠지 절대 덜 하진 않으리라. 아이의 입장에 나를 대입해 보자 그런 아이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둘째가 백일이 될 때까지는 정말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그저 너무 피곤하여 아이랑 놀아주다가도 픽픽 쓰러져 잠들곤 했었다. 백일이 지나고 둘째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부터 좀 더 수월해진 것 같다. 규칙적으로 낮에는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과 산책을 나갔다. 많은 걸 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에 하나의 목표만 세웠던 것 같다. 




"오늘은 동생 자면 뭐하고 놀까?"

둘째가 낮잠 자는 오후 시간을 이용하여 우리는 간단한 놀이를 함께 했다. 단 10분이라도, 아이와 함께 앉아서 역할놀이, 만들기, 책 읽기 등등. 첫째 아이의 결핍을 채워주려 노력했다. 집안일은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노력을 아는지 첫째 아이도 동생을 예뻐했다. 동생에게 직접 우유를 먹여주기도 하고, 기저귀 심부름도 잘해주었다. 아직 3살이면 한창 어린 나이인데 동생을 본 첫째가 안쓰럽기도 하면서 기특하기도 했다.




워낙 활동적이었고 사람을 좋아하는 첫째는 친구들과 노는 걸 너무 좋아해 5살부터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아이는 이제 사회활동을 할 준비가 되어 보였다. 그 무렵 나는 또 셋째를 임신했다. 자녀 계획은 최대한 터울 없이 낳아서 한 번에 같이 키우고 싶었다. 바짝 고생하자는(?) 나의 계획대로 정말 정신 쏙 빼놓을 정도로 지내고 있는 중이다.



 첫째는 병설 유치원에 다녔는데 9시 등원하여 1시 반에 하원 했다. 정신없이 아이를 아침에 보내고 나면 집안일은 뒤로 하고 둘째와 놀아줘야 한다. 그리고 간단하게 집을 치우고 나면 곧 1시 반이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무거운 몸으로 유모차를 밀고 냅다 뛴다. 정신력으로 버텨냈다고는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11월, 기다리던 막내를 출산했다. 이제 우린 가족계획의 완성체인 5명이 되었다.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독수리 오 형제!"








병설 유치원은 겨울 방학이 2달, 여름 방학이 1달 정도 된다. 짧은 하원 시간도 엄마들이 병설을 포기하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병설 유치원에 간 첫 해에는 내 선택에 대해 막심한 후회를 했다. 그나마 두 번째 해에는 몸이 적응되었는지, 동생 둘을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를 등 하원 하는 게 한결 수월했다.



남들은 절대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나는 유치원을 안 가는 방학 기간이 편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차라리 아이들과 여유롭게 지내는 방학이 좋았다. (돌아서면 데리러 가야 하는 짧은 하원 시간이 가장 큰 이유다.-_-)




올 해는 코로나로 인해 5살이 된 둘째도 같은 병설 유치원에 입학했지만, 몇 번 가지 못했다. 올 1월부터 아이 셋과 아주 기나긴 방학이 시작된 셈이다. 지난 7년 간 한시도 빼놓지 않고 24시간, 365일을 아이와 함께 있었다. 첫째가 기관에 가고 나선 둘째와 오롯이, 둘 다 기관 다닐 때쯤엔 셋째가.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아이 셋과 완전체의 집콕 육아가 시작되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책의 한 부분을 보면 "지금까지 성공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개 한 가지 일을 최소한 1만 시간 넘게 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1만 시간이 넘게 노력과 연습에 투자해 성공을 이뤘거나 최소한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라고 한다. 7년 간의 시간을 계산해보면 대략 61,321시간으로 계산된다. 나는 그간 1만 시간의 6배인 6만 시간을 넘게 아이와 함께 보냈다. 첫째든, 둘째든, 셋째와 함께든 7년간 난 한시도 육아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정말 찐한 고농축으로 즐긴 6만 시간의 육아다.



그렇다면 나는 육아의 초초초 달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난 아직도 한 치 앞을 모르는 육아 대리급 정도 되는 엄마일 뿐이다. 다만 이제 막 육아를 시 작하는 인턴, 신입 사원급 엄마들에게는 나의 경험들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신입의 패기에 넘쳐서 이것, 저것 다 해보았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서 결국 불필요한 것들은 빼게 되었다. 결국 지금은 나의 가치관이 가리키는 본질적인 것들만 남았다.




코로나로 인해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엄마들이 집콕 육아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 시기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언택트가 강화되면서 가정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야 하는 시간은 전보다 늘면 늘었지, 줄진 않을 것 같다.



지금의 이 상황 탓만 하며 있기보다, 이 참에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보는 기회로 만드는 건 어떨까. 헤르마완 마크 플러스 회장은 "한자어 '위기(危機)'에서 '위(危)'는 위험을 의미하지만 '기(機)'는 기회, 즉 변화의 지점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라는 말을 했다.




위기를 변화의 지점으로 만드는 것은 나에게 달린 일이다. 뺄 건 빼고 중요한 것만 남겨놓는 미니멀한 육아. 아이와의 문제로 감정 조절이 어려운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연습. 어려운 이 시기가 오히려 아이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그리고 엄마인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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