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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콩 Sep 24. 2020

나는 다중이 엄마입니다

육아 일상에 이야기가 얹어질 때

일어날 시간이 아닌데 방 안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밝은 빛에 아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부엌으로 나왔다.

"엄마, 이빨 요정이 안 왔나 봐.." 실망감이 배어있는 아이의 목소리에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아, 요정이 이빨을 못 찾았나? 다른 데 있을 수도 있잖아. 다시 한번 잘 찾아볼래?"



아이의 이가 빠지는 날이면 이빨 요정이 온다. 아이는 빠진 이를 머리맡에 두고 잔다.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문방구 앞 뽑기에서 나온 투명한 플라스틱 원형 통에 넣어 놓는다. 아이가 잠든 사이 이빨 요정은 이빨을 가져가고 킨더 조이를 동생 것까지 2개 두고 간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이 빠지는 건 무서운 일이 아니라 손꼽아 기다리는 일이다. 심지어 5살 동생도 얼른 이가 빠졌으면 좋겠다고 하소연이다.



그런데 글쎄, 오늘 요정님이 깜빡하고 킨더 조이를 두지 않았다. 아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찬장에 숨겨 두었던 킨더 조이를 잽싸게 꺼내어 아빠 베개 밑에 숨겨두었다. 샅샅이 찾아보라는 나의 조언에 따라 아이는 이불과 배게를 뒤집어 보다가 금세 발견하고 함박 웃음을 짓는다.

"휴, 다행이다." 요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sns 매체가 개발되는 건 어쩌면 나의 이야기를 알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나는 싸이월드와 페이스북 시대인데 요즘은 인스타, 유튜브, 틱톡이 대세인 시대이다. 이 매체 또한 언제 사라지고 어떠한 새로운 매체가 나올지 모르겠다. 기술 발전이 빨라도 너무 빠른 시대다. 하지만 본질적인 건 변하지 않는다. 그 어떠한 매체가 나오더라도 사진이건, 동영상이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사실이다.








우리 집의 하루의 시작과 끝은 이야기로 시작되어 이야기로 끝난다. 엄마인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역할의 배우를 자처하는 다중이다.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밥 먹으라고 여러 번 불러도 대답조차 하지 않을 때, 나는 식당 아주머니로 변한다.

"여러분~ 주문하신 가지 볶음밥 나왔어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금방 가요."

'밥 먹어라'라는 내 말에 불러도 대답도 없이 놀이에 열중하던 녀석들이 이 말은 기가 막히게 잘 들리나 보다. 금세 식당 놀이가 펼쳐진다.




"아주머니, 물 좀 주세요."

"물은 셀프예요. 손님~ 어때요? 음식은 입에 맞으신가요?

"음. 네! 완전 최고예요. 요리사예요!!"

"감사합니다. 밥을 다 드신 고객님들께는 서비스로 포도를 드릴게요."

아이들의 신난 고함소리 후 우리는 즐겁게 밥을 먹는다. 후식까지 배불리 먹고 난 후 우리는 마지막 코스도 빼먹지 않는다.



"얼마죠?"

"한 그릇에 3천 원씩입니다. 세 명이니 9천 원 내시면 돼요."

항상 내 맘대로 정하는 밥값이다. 아이들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내 손에 돈을 쥐어주는 척하고 뛰어간다. 식당 손님들은 대만족을 하신 듯하다. 뿌듯한 마음의 식당 아주머니는 식탁을 반짝이게 닦는다.



아주머니는 설거지를 끝마치고 금세 유치원 선생님으로 변한다.

"별이 유치원 친구들. 재밌게 놀았나요? 이제 곧 하원 할 시간이에요. 신나게 놀았던 물건들은 정리하고 갈까요?"

"정리요? 아.. 네."

시원스럽지 못한 대답이지만 아이들은 또 유치원 놀이에 집중한다. 정리를 다 한 후에는 폭풍 칭찬과 함께 하원을 한다. 어디로 가냐고? 화장실로 하원 한다. 양치하고 씻기며 또 어떤 역할을 할까 잠시 고민에 빠진다.



EBS 다큐프라임 <이야기의 힘>에서 '지하철 구걸 실험'을 진행했다. 아무 말도 없이 지나가는 거지에게 사람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곧 태어날 제 아이가 올봄에 필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이용해 동정심을 호소하자 호응도가 높았다. 이야기는 상대방의 정서적 몰입과 공감을 불러일으켜 내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할 수 있게 만든다. 



육아의 일상에 이러한 이야기를 넣어 보는 건 어떨까. 같은 상황이라도 아이들은 이야기가 입혀진 상황에 즐겁게 반응한다. 사실 이야기에 빠지는 순간 엄마도 의무감에서 해방되어 즐기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 같다. 하기 싫었던 일도 이야기가 들어가면 즐거워진다. 팍팍한 일상을 즐겁게 만들려는 노력 또한 능력이다. 매일 쳇바퀴 같은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다. 오늘부터 아이와 일상에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엄마 마음은 편안하고, 아이 마음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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